영양군은 동쪽은 영덕군과 울진군, 서쪽은 안동시, 남쪽은 청송군, 북쪽은 봉화군과 울진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8°58′∼129°18′, 북위 36°29′∼36°52′에 위치한다. 면적은 815.15㎢이고, 인구는 1만 7898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5개 면, 114개 행정리(74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서부리에 있다. ▣자연환경 지세는 태백산맥의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분지상(盆地狀)으로 발달했으며, 전반적인해발고도가 경상북도에서 가장 높다. 군의 동부와 북부에는 백암산(1004m)·일월산(1219m) 등 1000m 이상의 높은 산지가 있다. 이 밖에도 검마산(劍磨山)·수양산(首陽山 일명 창뒷산·창후산)·작약봉(芍藥峰, 726m)·주령(珠嶺)·행곡령(行哭嶺, 460m)·홍림산(興霖山 일명 黑霖山·黑林山, 767m) 등의 높고 낮은 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일월산에서는 3개의 지맥이 뻗어나온다. 울련산(蔚蓮山, 939m)·금장산(金藏山, 849m)·오십봉(五十峰, 827m)·맹동산(808m)·명동산(明童山, 812m)을 연결하는 동부지맥은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半邊川)유역과 동해사면을 나누는 분수령을 형성한다. 덕산봉·영등산(507m)을 중심으로 한 서부지맥은 군의 서쪽경계를 이룬다. 흥림산·작양봉·부용봉(376m)을 연결하는 중앙지맥은 태백산맥의 주향(走向)을 따라 남북으로 달리고 있다. 하천은 동부지맥과 중부지맥 사이에 장군천(將軍川)·장수포천(長水浦川)·장파천(長坡川)·하원천·화매천(花梅川) 등이 여러 갈래로 흐르고, 중앙지맥과 서부지맥 사이에 동천(東川)·소청천·신사천·동산천 등이 흐른다. 군의 대부분의 하천이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과 합해지는데, 수비면 본신리와 오기리에서 시작된 장수포천만이 북동쪽으로 흘러 왕피천의 원류가 되며 동해로 흘러든다. 일월면 일월산 동북쪽에서 발원한 장군천은 남류해 도곡리·가곡리·주곡리를 지나 도계리 부근에서 낙동강 상류인 반변천에 합류하며 산지 가운데를 흐르고 있어 곡저평야가 매우 좁다. 청기면 북부 서부지맥에서 발원한 동천은 청기면 남부를 남류하다 입암면 신사리 부근에서 반변천과 합류해 상당히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이렇듯 평지는 하천 연안을 따라 군의 남부에 협소하게 발달돼 있으며, 토양은 점토질이다. 지질은 주로 중생대 백악기의 경상계에 속하는 퇴적암이다. 산간내륙지역으로 기온의 일교차 및 연교차가 심하고, 일조시간은 짧은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12.1℃ 내외, 1월 평균기온 -2.3℃ 내외, 7월 평균기온 24.9℃ 내외이고, 연평균강수량은 1287.4㎜ 내외이다. 해발고도가 높으므로 북부의 수비면과 청기면 일대에는 10월 초에 서리가 내린다. 특히 겨울이 다른 지방보다 길고 눈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 ▣역사 이 군의 역사에 대해서는 고고학적인 조사의 결여와 문헌적인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이것은 이 지역이 벽지에 위치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사회에서 오랫동안 독립행정구역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사시대에 대한 것은 앞으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며, 역사시대 초기의 사실도 아직 잘 알 수 없다. 본래 이 지역은 고구려에 소속됐던 것 같고, 후일 신라에 의해 병합됨에 따라 고은현(古隱縣)이 설치됐다. 757년(경덕왕 16) 유린현(有隣縣)주 01)의 영현이 됐는데, 오늘날 영양군의 행정구역인 청기면·영양읍 일대는 명주(溟州)에, 일월면·수비면 일대는 양주(良州)에 분할, 소속돼 있었다. 또, 현재의 청기면 일대에 위치했던 청기현(靑杞縣)도 그 역사는 잘 알 수 없지만, 고은현과 함께 유린현에 소속돼 있었다. 고은현은 940년(태조 23)영양군으로 개명돼 청기현과 함께 1018년(현종 9)예주(禮州)의 속읍이 됐다. 1175년(명종 5) 감무가 처음으로 임명됐다. 영양군 관내에는 수비부곡(首比部曲)이 있었는데, 문종 때에 일시 울진에 소속됐다가 영양군으로 환속됐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대청부곡(大靑部曲)·소청부곡(小靑部曲)이 합해져서 1304년(충렬왕 30)에 청기현을 형성했다고 한다. 고려 말까지 영양군·청기현은 여전히 예주의 속현으로 존속하고 있었다. 이 지역 속현으로서의 위치는 조선 전기에도 계속돼 영해부에 소속돼 있었다.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당시의 호구수는 영양현이 40호 1026인, 청기현이 29호 462인이었다고 하며, 영양현의 토성(土姓)은 남(南)·이(李)·김(金)·방(房)씨가, 청기현에는 속성(續姓)에 유(兪)·최(崔)씨가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오랫동안 독립행정구역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호구수도 적었고 역사무대에서도 제외돼 있었다. 이의 극복을 위한 움직임이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1664년(현종 5) 이 곳 출신인 조암 등이 영해부로부터의 독립을 상소하면서 예속으로 인한 민폐를 제거해 줄 것을 아울러 건의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부역균등과 같은 민폐제거만 허락했다. 1675년(숙종 1)조책(趙0xFB42) 등의 상소에 의해 독립, 분리됐으나, 1676년 다시 영해부에 환속됐다. 1677년 남시하(南時夏)의 상소를 계기로 독립은 허락되지 않고 행정편의와 민폐제거를 위해 영양현을 진보현(眞寶縣)과 영해부에 나누어 소속시켰다. 1682년 남시직(南時稷)의 상소에 의해 마침내 청기현과 합해져 독립현이 설치돼 독립행정단위를 구성하게 됐는데, 석보면은 계속해서 영해부에 속했다. 1895년영양군으로 승격돼 안동부에 속했고, 1896년경상북도 영양군으로 4등군이 됐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조정돼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 시기에 전개된 항일투쟁에 이 지역 인사들이 적극 참여했다. 특히 1906년에 형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위시해 수많은 사람들이 의병투쟁에 가담해 지속적으로 일제에 항거했다. 그리고 이러한 항일투쟁은 3·1운동에도 연결돼 1919년 3월 25일에 영양읍 장날을 기해 1000여명의 주민이 모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받기도 했다. 1945년 8·15광복 이후에도 대규모의 행정구역 개편은 없었다. 1963년울진군 온정면 본신리가 수비면에 편입됐고, 청기면에 당동출장소가 설치됐다. 1979년 5월 1일영양면이 읍으로 승격됐고, 1983년입암면 방전동 일부와 흥구동 일부가 청송군 진보면으로 분리, 편입됐다. 1987년 1월 1일석보면 양구동과 수비면 기산동이 영양읍으로, 입암면 방전동 일부가 석보면으로 각각 편입됐으며, 석보면의 북계동이 옥계동으로 개칭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이(里)로 개칭됐고, 1990년입암면 산해리 일부가 신사리로, 1994년울진군 서면 왕피리 일부가 수비면 신암리에 편입됐다.영양읍·입암면· 청기면·일월면·수비면·석보면 등 1읍 5면으로 이뤄져 있다. ▣유물·유적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영양읍 감천리에 고인돌이 있고, 여러 곳에 고분이 산재해 있다. 산성은 청기면 상청리에 검산성(경상북도 기념물, 1985년 지정)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일월면의 주곡동사지(注谷洞寺址), 입암면의 신구동사지(新邱洞寺址), 영양읍의 대천동사지(大川洞寺址) 등의 절터가 있다. 석탑으로는 입암면의 영양 신구동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과 수성암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아올린 산해리의 봉감모전오층석탑(국보, 1977년 지정)을 비롯해, 영양읍의 화천동 삼층석탑(보물, 1977년 지정)·현일동 삼층석탑(보물, 1977년 지정)·현이동 모전오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영양 삼지동 모전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13년 지정)·서부동삼층석탑, 일월면의 용화동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등이 있다. 불상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약사여래를 표현한 입암면의 영양 연당동 석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과 신구동석불좌상, 일월면의 도곡동석조여래좌상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일월면 도계리의 영양향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일월면 주곡리의 월록서당(경상북도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영양 야성정씨 참판공 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가곡리의 명고서원(明皐書院), 입암면 산해리의 봉람서원(鳳覽書院), 영양읍 동부리의 여남강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석보면 원리리의 석천서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입암면 연당리의 영양 서석지(중요민속자료, 1979년 지정)는 광해군 때의 학자인 정영방(鄭榮邦)의 은거지로 유명하다. 고건축물로는 청기면 상청리의 벽산생가(경상북도 기념물, 1985년 지정), 기포리의 회곡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88년 지정), 일월면 주곡리의 조지훈생가(경상북도 기념물, 1988년 지정)·주곡동 옥천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83년 지정), 영양 가산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석보면 소계리의 오류정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원리리의 석계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90년 지정), 영양읍 감천리의 오일도생가(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1년 지정), 하원리의 월담헌 및 사월종택(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이 있다. 정자로는 영양읍 대천리의 영양 삼구정(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감천리의 학초정 및 정침(경상북도 민속자료, 1985년 지정)·연소정(蓮沼亭)·삼수당(三秀堂), 석보면 주남리의 남악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수비면 발리리의 약천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입암면 신구리의 약산당(경상북도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영양읍에는 영양 현동당간지주(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수비면에는 영양 신원동 백자도요지(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석보면에는 영양 화매동 백자도요지(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가 있고, 영양읍 서부리에 영양 상여장(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987년 지정)이 전승되고 있으며, 감천리에는 영양 감천리 측백나무 숲(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1679년(숙종 5)일월면 도계리에 창건된 영양향교가 있다. 한편, 문헌에 의하면 고려 명종 9년(1179) 지금의 영양읍 현리에 처음으로 현사(縣司)를 설치하고 동부리여기봉(女妓峰) 아래에 향교를 설치해 그 일대를 향교리라 했다고 하나, 잦은 병란으로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상세한 기록도 없다. 서원으로는 1655년(효종 6) 기존의 영산서당(英山書堂)을 서원으로 승격시켜 현리에 영산서원을 세웠고, 1780년(정조 4)영양읍 감천리에 운곡서원(雲谷書院)과 동부리에 여남서원(汝南書院)이 있었다. 1828년(순조 28) 조선 중엽부터 있던 일월면 가곡리의 명고서당(明皐書堂)이 명고서원으로 승격됐다. 그 밖에도 입암면 산해리에 봉람서원, 석보면 원리리에 석천서당이 있었다.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8년 옛날 영양객사(英陽客舍) 자리에 영양사립영흥학교(英陽私立英興學校)가 최초로 개교했다. 그 뒤 이 학교는 학제개편으로 인해 1911년영양공립보통학교로 전환됐다. 1921년석보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됐고, 그 뒤 1면 1교의 교육체제가 갖추어지게 됐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6개교,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3개교가 있다. 문화공간으로는 경상북도립 영양공공도서관, 군민회관 1개 복지회관 2개, 문화원 1개소가 있다. 특히 영양문화원은 1945년남정팔(南廷八)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영양문화협회에 토대를 두고 1968년에 설립됐고, 같은 해영양읍 서부리에 문화원회관이 건립됐다. 또 해마다 10월에는 민속원놀음, 해달뫼 축제 등 영양문화재 행사를 한다. 이 외에도 미스영양고추선발대회를 개최한다. ▣민속 군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원놀음·윷놀이·농악·화전놀이 등을 들 수 있다. 원놀음은 농한기인 정월 초순에 행해지던 놀이인데, 조선조의 하위관장인 원을 무대로 일어났던 일들을 극화해 놀이화한 것이다. 주로 동네유지의 마당이나 대청에서 연희되지만 규모가 클 경우에는 마을공터 등에서도 행해진다. 놀이의 순서는 먼저 육방관속과 백성들이 원님에게 신년하례를 한 뒤, 원님이 고을사람들의 위법사실을 묻고 범법자를 추궁하는 것으로 행해진다. 대사의 내용은 지방수령이 전제하는 행정·군사·사법·조례·부역 등에서 고루 채택됐으며, 주민의 생계와 직접 관련된 농업에 관한 대사도 있어서 주민의 생활상을 어느 정도 반영해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대사에는 즉흥적인 것이 많고 기지가 있어 사회비판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마을 단위로 마을수호신인 서낭을 섬긴다. 서낭은 깃털을 동여매고 의복을 입힌 긴 장대에 접신하게 해 모시기도 하고, 돌제단이나 당(堂)을 지어 그 안에 모시기도 한다. 서낭당의 경우는 주로 산마루나 고개에 있는데, 일월산·검마산·울렬산·작약봉·읍령·장갈령 등지의 서낭당이 유명하다.      이 서낭당은 제일 외에 평상시에도 개인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장대에 모신 서낭은 평소 동사(洞祠)에 모셔두었다가 정월 대보름날 서낭당이나 서낭목 앞으로 옮긴 뒤 동민들이 연중무병과 평온무사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제주는 1주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제사 때까지 육류를 먹지 않으며, 또한 병자나 상을 당한 자도 일체 만나지 않으면서 근신한다. 제사 3일 전부터는 제단 주위를 청결히 유지하며, 왼새끼로 금줄을 쳐 부정을 막는다. 보름날 자정이 되면 제사를 지내고 날이 밝는 대로 동회를 열어 동제보고를 한다. 이때 신임 유사를 선출하는 등 마을의 중요사항도 논의한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지명전설과 인물전설이 몇 편 전해오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베틀굴전설’을 들 수 있다. 옛날 구매동이라는 마을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당장의 끼니조차 잇기 힘들었기 때문에 남들이 공부할 때도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집안일을 도우면서 틈틈이 독학을 했다. 노력한 보람이 있어 얼마 뒤에는 가난도 면하고 같은 마을에 사는 처녀와 결혼도 할 수 있었다. 얼마 동안 두 부부는 행복한 생활을 영위했으나, 남편이 전장(戰場)에 나가게 되는 바람에 그들은 안타까운 심정을 누르고 이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이 두 해가 지나면 돌아오마하고 기약하고 북방으로 떠나자, 아내는 마을 근처 골짜기에 있는 동굴로 들어가 베를 짜며 남편이 무사히 귀향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두 해가 지나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베틀에 앉은 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끝내는 세상을 떠나게 됐다. 그리해 사람들은 이 동굴을 베틀굴이라 했는데, 지금도 궂은 날 밤이면 두 사람의 못 다한 사랑을 애처로워하는 듯 베짜는 소리가 이 동굴에서 들려온다고 한다. 석보면 소계리에는 황씨들이 살았는데, 부유하게 살다가 망해버린 내력이 전한다. 원래 황씨 내외는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데, 산길에 쓰러진 풍수를 구해주고 차차 부자가 됐다. 풍수의 말대로 학바위를 향해 사립문을 돌려내고 난 뒤 나무를 팔고 약초씨를 사서 심어 큰 수확을 올렸다.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자 많은 손님이 끊일 새가 없었다. 대를 거듭할수록 며느리의 불평이 심해져 손주대에 이르러서는 귀찮은 손님이 적게 오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손주며느리가 어느 날 시주 온 스님에게 그 비결을 물었더니 집 앞의 학바위를 깨버리라고 했다. 손주며느리는 남편 몰래 학바위를 깨버렸다. 뒤늦게 이를 안 남편이 학바위를 보존하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생각하고 애통해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학바위에서 학이 날아간 뒤로 흉년과 도난으로 재난이 겹쳐 황씨네는 점차 재산을 잃고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이 밖에도 조선 때 온갖 권세와 횡포로 말미암아 사라지게 됐다는 ‘지씨마을이야기’, 시어머니의 구박에 못이겨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는 ‘황씨부인당전설’, ‘장군천전설’ 등이 전해온다. 이 고장에서는 옛날부터 여러 가지 노동요가 다양하게 불려왔으나 생활양식과 농경방법의 변화로 차츰 쇠퇴해 현재 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은 농업노동요와 부요(婦謠) 등이다. 특히, 모내기에 앞서 못자리에서 모를 뽑아내면서 부르는 ‘모찌기소리’는 도내에서도 드문 노래로 일월면 주곡리에서 전승되고 있다. “대키소 대키소 주먹모으로 대키소 열우소 열우소 사세모으로 열우소” 하며 그 형식이 ‘모내기소리’와 같으나 사설이 단편적인 것이 특색이다. 또 “뒤여뒤어 상사디여, 응호 이히히 상사디야……”로 시작하는 이 곳의 ‘모내기소리’는 남녀간에 함께 전승하고 있는데, 그것은 원래 남녀교환창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남자쪽에서 먼저 부르면 여자쪽에서 받아 부른다. 잡역노동요인 ‘어사용’은 어새이(樵夫歌)라고도 하는데, “저건너 저묵밭은 원전이냐 화전이냐 작년에도 묵었더니 날과 같이 또 묵었네 에에에이……”하며 산에 나무하러가서 곧잘 부르는 노래로 군내에 분포돼 있다. 또, 더러는 “얼시구나 남날적에 나도나고 내날적에 남도 났건만……”으로 시작하거나 “구야구야 산에신곡산 가리갈가마구야 날이 새면 날건마는……”으로 시작해 팔자한탄으로 시종하는 것도 있다. 부요로서는 길쌈할 때에 부르는 ‘시집살이노래’와 ‘이서방네 맏딸애기길쌈노래’가 현재까지 잘 전승되고 있으며, 화전놀이 가서 부르는 ‘춘유가’와 아기 어루면서 부르는 자장가가 전하고 있다. 해발 250m의 산정을 깎아 마을을 이뤄 사는 청기면 토곡리에는 화전민의 농업노동요가 잘 전승되고 있다. ‘괭이노래’는 “어허 괭이얘이 어허 괭이얘이 괭이꾼아 들어봐라 한괭이 두괭이 쪼아보세……” 하며 공동으로 밭갈이할 때에 부른다. ‘도리깨소리’는 타작노래인데, 이 곳에서는 보리나 콩을 타작할 때 부른다. 목도리깨군이 앞소리를 메기면 종도리깨군이 따라 여음을 부르는 이 노래는 노동요 중에서 사설이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작두소리’는 잡역노동요로서 풀을 썰 때 풀을 넣는 사람과 발로 작두질하는 사람이 부르는 민요이다. 대체로 속도가 빠르며 풀을 다 썰 때까지 사설은 창작 반복되는데, ‘보리타작소리’처럼 1음보가 그 중심이다. ▣산업·교통 2008년 현재 임야가 전체면적의 80.7%를 차지하며 경지면적은 66.05㎢로 경지율이 8.1% 정도에 지나지 않다. 게다가 기온이 낮고 강수량도 적어 영농조건이 매우 불리하다. 저수지로는 운룡지(雲龍池)·원당지(元塘池) 등이 있다. 2008년 현재 경지 중 논이 17.83㎢로 약 26.99%를 차지하고 밭은 48.22㎢로 약 73.01%를 차지하며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남부의 평야지대에서는 주로 쌀이 생산되며, 옥수수·팥·수수 등의 잡곡, 사과·복숭아 등의 과수, 수박·호박·참외·토마토·고추 등의 소채류가 재배된다. 산지의 사면에서는 한우 사육과 양봉이 활발하며 그 외 닭·돼지 등이 사육되고 있다. 특산물은 고추·더덕·담배·일천궁·사과·참배·복숭아·포도·고랭지채소·채소(무, 배추), 산채 등이다. 이 밖에도 향취가 좋은 잎담배도 생산된다. 껍질이 두껍고 빛깔이 고우며 맵고 단맛이 나는 고추는 ‘영양고추’라고 해 질이 좋기로 유명하며, 이 고추로 만든 고춧가루·고추장도 더불어 유명하다. 영양더덕은 토심이 30∼50㎝ 정도의 모래참흙에서 퇴비와 톱밥을 이용한 유기물로 재배해 뿌리가 곧고 길게 뻗어 자연 더덕 특유의 맛과 향기를 지니고 있다. 일천궁은 미나리과 숙근초로 내한성이 강한 북방형 식물로 한방의 4대 기본약재로 쓰이며 전국의 70%가 영양군에서 생산되며 품질이 우수하기로 이름나 있다. 영양참배는 과일이 매끈하고 육질이 아삭아삭해 그 맛은 전국최고를 자랑하며 복숭아는 특유의 향기가 진한 고품질 복숭아로 시중에 인기가 높다. 영양포도는 포도 생육에 적합한 기후와, 토질이 좋아 포도 알이 굵으며 주야간의 온도차이가 많아 당도가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해발 1219m의 고산인 일월산을 중심으로 주위의 검마산과 맹동산에서 생산되는 고랭지 여름채소는 토양이 비옥하고 경사가 적당해 물 빠짐이 좋으며 한여름 기온이 낮은 재배환경에서 생산되며 특히 배추는 결구엽이 많고 조직이 단단해 쉽게 무르지 않으며 맛이 고소해 최고를 자랑한다. 2008년 현재 임목축적은 683만8080㎥이며 임산물 생산량은 종실 16만947㎏, 나물 14만9120㎏, 버섯 2만6423㎏ 등이다. 산림자원을 이용한 제재업이 영양읍을 중심으로 발달했고, 일월산의 금죽·참나물·고사리 등의 산나물과 청기면 북부의 지황(地黃) 등도 명성이 높다. 광업의 경우 1994년 현재 광구 수는 수비면이 가장 많은 4개, 영양·일월·수비·석보면이 각각 1개씩, 모두 8개로 미가행광구이다. 상업활동을 보면 통일신라 이전에 이 군에는 가축시장과 주읍시(州邑市)가 있었다고 하나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1830년대 군내에는 영양읍장과 어염장(魚鹽場)이 있어 주로 소금·해산물 및 농산물이 거래됐다. 1928년경에는 5일 정기시장이 5개로 늘어났고, 1957년에 6개로 증가했다. 1960년대 이후 어업이 근대화되고 동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자, 정기시장의 사회·경제적 기능이 점차 쇠퇴하고 있다. 1986년청기면의 당동장(唐洞場)은 거의 소멸됐고 1988년에는 4·9일에 열리는 영양읍시장, 3·8일에 열리는 입암장·수비장과 석보장이 있었다. 2008년 현재는 영양장 1곳에서 지역의 우수한 농산물이 거래되고 있다. 정기시장 외에 유통시장의 근대화에 따라 8개의 농협연쇄점이 개설돼 있다. 제조업 현황을 살펴보면 음식료품제조업체 4개, 비금속광물 제품제조업체 4개 모두 8개 업체에서 연간 207억700만원의 매출을 보이고 있다. 교통은 국도 31호선이 군의 중앙을 남북으로 청송과 봉화로 연결되고 그 외에도 지방도가 각 군도와 연결돼 있다. ▣관광 도내에서 가장 깊은 산골인 이 군은 고추의 명산지로 알려져 있을 뿐, 교통이 불편해 관광지로 개발된 곳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일월산과 반변천을 따라 곳곳에 피서와 휴식에 적당한 경승지가 있어 개발의 여지가 있다. 명승지로는 일월산·울련산·오십봉 등이 있다. 군의 북쪽 일월면과 청기면 사이에 있는 일월산은 주봉이 일자봉(日字峰)과 월자봉(月字峰)으로 돼 있다. 일자봉에 오르면 동해가 눈 아래로 보이고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다. 흰 바위가 있는 강점골, 기우제를 지냈던 곳, 대나무가 많은 댓골, 도장바위가 있는 도장골, 병풍바위가 늘어서 있는 병풍골, 호박소가 있는 호박골 등의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져 있다. 그 밖에 용화사터·용화동3층석탑(일명 선녀탑·공주탑),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용화선녀탕 등이 있다. 부근에 천축사(天竺寺)·천화사(天華寺) 등의 사찰이 있다. 일월산에서 시작되는 반변천의 물줄기를 따라가면 일월면 곡강리의 척금대와 여기봉·병풍암·반월산·이수곡·동만곡·약수천·지석암 등의 곡강8경, 영양읍의 세심암(洗心巖)·선유굴(仙遊窟)·양호대(養浩臺)·송영당(送迎塘)·원당지를 비롯한 삼지(三池), 입암면의 초선대(招仙臺)·남이포(南怡浦)·입암(立巖) 등이 있어 강변·절벽·백사장 등이 조화를 이룬다. 그 중 선유굴(仙遊窟)은 영양읍 하원리 서쪽에 있으며, 이 굴은 일월산에서 발원하는 반변천이 영양읍 상원리를 돌아 하원리에 이르러서 오랜 세월동안 퇴적암 석벽을 침식해 형성된 것이다. 굴 주위는 아름답고 선경을 이루며, 옛날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에 따라 선유굴이라고 명명됐다. 입암은 입암면 연당리와 신사리로 반변천이 흘러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석봉(石峰)으로, 입암의 양편이 모두 석벽이라 사람과 짐승이 올라가지 못해 선바위라 하며, 일명 선암(仙巖)이라고 하기도 한다. 계곡으로는 수비면 수하리의 수하계곡과 본신리의 본신계곡, 석보면 삼의리의 삼의계곡 등이 있다. 수하계곡(水下溪谷)은 반변천의 지류로 수비면 본신리와 오기리에서 시작되는 장수포천(長水浦川)의 맑은 물이 소나무가 무성한 산속을 뚫고 흐르며, 넓적한 화강암과 부딪쳐 웅덩이를 만들기도 하고, 크고 작은 폭포를 빚어내어 매우 아름답다. 수하계곡과 울련산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있는 본신계곡은 금장산·울련산·검마산·백암산으로 이어지는 태백산맥의 준령 사이에 태고의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칙한 채 장장 6㎞에 걸쳐 맑고 푸른 계곡이 펼쳐져 있다. 삼의계곡은 해발 812m의 명동산(明童山) 깊은 골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이 오랫동안 쉬지 않고 흙을 깎아내며 원시림 속을 흘러 6㎞의 계곡이 만들어졌으며, 계곡물이 매우 맑고 차가우며 크고 작은 폭포가 많다. 폭포로는 영양읍에서 청기면으로 가는 입구 1㎞ 지점에 신경통·안질·가려움증에 효험이 있다는 높이 3∼4m의 팔수곡폭포(八水谷瀑布), 영양읍 감천리의 반변천과 연한 국도변에 위치한 감천폭포(甘川瀑布), 석보면 화매리의 화매절골폭포와 화매폭포 등이 있다. 약수로는 입암면 양항리의 양항약수, 청기면 정족리의 나방약수(羅方藥水) 등이 있다. 또한, 석보면 원리리의 8대 경승지인 광로산(匡蘆山)·병암산(屛巖山)·낙기대(樂飢臺)·세심대(洗心臺)·동대(東臺)·서대(西臺)·석천서당(石川書堂)·광록정(廣麓亭) 등의 석포팔경(石浦八景)도 유명하다. 이러한 자연 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축제들이 펼쳐지는데 대표적으로 일월산해맞이축제(1월 1일), 고추축제(9월), 산나물축제(5월) 등이 있다. 또한 수비면 신원리에 소재한 검마산자연휴양림, 일월산과 그 주변 자락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봄, 여름에 볼 수 있는 일월산자생화공원, 수비면 수하리 지푸네 마을 일대에 영양반딧불이생태공원, 분재수석야생화전시관, 고추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와 전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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