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및 김진태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정부기관과 군(軍)의 지난해 대선개입 의혹사건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제(특검) 도입 문제에 대한 여야 간 이견으로 경색된 연말 정국상황이 한층 더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일 청와대와 국회에 따르면, 안전행정부는 전날 오전 11시30분쯤 박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문 내정자와 김진태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20일까지 정부로 송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의 공문을 국회에 보냈다.
문 내정자와 김 내정자는 지난 13일 각각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와 법제사법위의 인사청문회를 모두 마쳤지만, 민주당이 문 내정자에 대해 과거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시절 `법인카드 사적 이용` 의혹 등을 이유로 사퇴를 요구하면서 두 사람 모두 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 여파로 이들 내정자 뿐만 아니라 역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및 임명동의안 처리 시기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현행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로부터 임명동의안 또는 인사청문요청안이 제출된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해선 그 제출일로부터 20일 이내에 심사 또는 인사 청문을 마쳐야 한다.
만일 이 기간 내에 국회가 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등의 관련 절차를 끝내지 못해 해당 보고서가 정부로 이송되지 않았을 땐 대통령이 그 다음날로부터 1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해 보고서 송부를 요청할 수 있고, 이 기간 동안에도 정부로의 보고서 송부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의 임명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공직 후보자에 한해 대통령이 국회 의견과 무관하게 임명할 수가 있다.
문·김 두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의 경우 황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함께 지난달 30일 국회에 제출돼 지난 19일로 청문 경과보고서 송부의 1차 시한인 `20일`을 넘긴 상태.
따라서 국회가 2차 시한으로 제시된 이날 중으로 두 내정자에 대한 청문 경과 보고서를 정부로 보내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은 오는 21일 이후엔 언제든 이들을 장관과 검찰총장으로 임명할 수 있게 된다.
박 대통령은 1차 시한을 넘긴 이후 단 하루만의 시간을 정해 인사청문보고서의 송부를 요청했을 만큼 임명을 시급히 강행할 태세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두 내정자에 대한 임명을 서두르는 것은 일단 해당 부처의 업무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인사공백`을 막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의 경우 지난 9월 말 정부의 기초연금 도입안을 둘러싼 청와대와의 갈등설(說) 속에 진영 새누리당 의원이 장관직에서 물러나면서 두 달 가까이 장관 공백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
게다가 검찰은 채동욱 전 총장이 `혼외자(婚外子)` 논란과 여권 핵심부와의 갈등설 속에 사의를 표명한 이래로 두 달여 간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검찰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사건은 물론,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의혹 등 정치·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수사를 진행 중인 만큼 수장(首長)을 빨리 채워 관련 수사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채 전 총장 사퇴과정에서 흔들린 조직 내 분위기 또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문 내정자의 경우 법인카드 사적 이용 등을 이유로 야당이 거듭 `임명 반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직(職)을 수행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청와대 내의 대체적인 기류라고 한다.
청와대 내 일각에선 "야당이 문 내정자 임명을 반대하는 것은 연말 정국에서의 주도권 확보 전략과도 무관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들 두 내정자에 대한 임명 강행 움직임을 보이자, 야당에선 "제3의 인사 참사를 부를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선 모습.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문 내정자의 장관 임명을 강행한다면 또 다른 불통과 독선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각인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더구나 문 내정자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박 대통령이 국회의 인사 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김 내정자에 대해서도 `법적 요건이 완비됐다`는 이유만으로 임명할 경우 자신의 과거 약속을 식언(食言)하는 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2월2일 검찰개혁에 관한 공약사항을 발표하면서 "검찰총장엔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임명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야당의 반발은 가뜩이나 꼬인 정국을 더욱 냉각시켜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박 대통령이 이들 두 내정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경우 현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가운데 국회의 인사 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인사는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을 포함해 모두 7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