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갑 교육전문기자 전국의 학교가 며칠 있으면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예나 지금이나 방학은 학생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 중의 하나다. 또한 방학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하면서 소중한 추억을 쌓기도 한다.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별로 방학을 기다리지 않는다. 방학이 다가왔다고 들떠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그럴 만큼 아이들이 한가하지 않다. 학교생활을 벗어나 소중한 추억을 쌓을 여유를 학생들에게 허락하지 않는다.방학이면 온·오프라인은 물론 기숙학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또 다른 학교’가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각종 시험에 시달리고 입시경쟁에 내몰려 있는 학생들에게 방학처럼 좋은 시간이 없을 텐데 우리의 교육현실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사교육 기관들은 방학이 다가올 무렵이면 각종 이벤트 등을 내걸며 학생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경품을 내걸기도 하고, 수강료를 할인해 주기도 한다. 방학 때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대입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불안한 생각을 들게 한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과 부모는 방학이라고 공부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오히려 학교에 다닐 때보다 어떻게 하면 더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공부할지 사교육 기관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학습계획을 세우는 데 집중한다.심지어 한 달 동안 집을 떠나 먹고 자면서 공부하는 기숙학원에 들어가기도 하고, 단기과정으로 해외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입시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한 달에 수백만 원이 넘는 교육비를 어쩔 수 없이 부담한다.   이처럼 요즘의 방학은 공부를 쉬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집중해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는 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기 이전에 방학기간에 선행학습을 통해 다음 학기 공부를 미리 해놓고 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방학이 변질됐다.오늘날의 방학 세태는 고스란히 우리 교육현실을 담고 있다. 부모 세대 중 많은 학부모는 지나친 경쟁 중심의 교육을 개탄한다. 그러면서도 자녀들의 방학 생활이 이래도 되나 끊임없이 갈등하며 교육 현실에 조금씩 순치되어 간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그런데 이제 부모님들이 생각을 바꾸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들을 떠나보내면서 내 아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공부보다 소중한 것, 일류대학 진학보다 행복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부모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자녀 교육, 우리 교육이 바뀔 수 있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아이들에게도 조금의 여유와 쉼이 있는 방학은 필요하다.   이제 곧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기자에게도 방학이 다가오면 어릴 적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방학 때 놀았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공부에는 담을 쌓고 산과 들을 다니며 뛰어놀고, 냇가에서 고기잡이와 물놀이를 하면서 신이 나게 놀았다. 물론 개학을 며칠 앞두고 학교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초등학교 다닐 때는 개학을 며칠 앞두고 숙제를 벼락치기로 몰아서 하곤 했다. 특히 선생님들이 방학숙제로 내주었던 ‘방학책’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하루 만에 다 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또 일기를 한 번에 몰아서 쓰기 위해 며칠 전 일을 기억해내려고 애쓰기도 하고, 때로는 일기가 아닌 소설로 일기장을 채웠던 일도 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처럼 공부에만 찌들지는 않았다.요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방학에 대한 기억은 어떨까? 아이들에게 공부에 시달렸던 기억만 남도록 한다면 어른들이, 부모들이 죄를 짓는 일이 아닐까? 아이들에게는 쉼이 필요하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방학을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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