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삼평리. 푸름과 평화를 의미하는 이름의 조그만 전원마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미 칠년 째 이어져온 원전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과 싸움이 항간의 종결 소문과는 다르게 더욱 깊어져 오다가 이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전이 법원에 대체집행과 억대의 배상을 청구했고, 주민들은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와 연대해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갈등 와중에 사망사건 등 자칫 밀양 송전탑 사태의 재발이 청도에서 빚어질 수 있는 상태다. △삼평리 제23호 송전탑만 남아한국전력공사는 2007년 12월부터 신고리원전의 발전 전력 수송을 위해 북경남변전소와 대구변전소간 송전 계통연계를 추진했다. 그 가운데 사업구간으로 청도군 풍각면, 각북면 일원에 선로길이 16km, 철탑 38기를 세우기 시작했다. 풍각면 19기 (금곡리 4기, 안산리 5기, 화산리 2기, 성곡리 8기) 각북면 19기(삼평리 4기, 우산리 5기, 덕촌리 5기, 지슬리 5기)로 인근의 주민들은 2009년 께부터 집단적으로 민원을 제기해왔다. 그러던 것이 개발지원금을 받아 모 장학회를 설립하게 되는 등 대다수의 마을은 한전과의 보상에 합의했다. 이제 남은 곳은 각북면 삼평리 한 곳이다. 송전탑도 삼평리 지역의 제23호 만 세워지지 않고 있다. 삼평리 50여 호 중 15호 20여명의 주민이 선로지중화 등을 요구하며 끝까지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움막을 외로이 지키는 할머니들대구시 가창면 정대리를 통해 가는 각북길은 유달리 험난하다. 가창댐 호반을 지날 때 보이는 호변은 오랜 가뭄으로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대구와 청도의 경계인 헐티재 정상은 매우 가파른 곡예길이다. 위험하고 지루한 산길을 가까스로 벗어나 넓지 않은 평야가 펼쳐지고, 각북면소재지를 지나자마자 삼평길 이정표가 보인다. 좁은 국도의 양편에는 수많은 플래카드가 만장처럼 펼쳐져 있다. “아름다운 각북, 살기 좋은 청도”라는 관상목으로 조성된 문구가 보이는 조그마한 저수지 둑에도 갖가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국도변에는 결사항전이라는 깃발이 세워진 농사용 임시 움막이 보인다.움막에는 아침이 지난 오전 시간에 인근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 모여든다. 아저씨 한 명과 할아버지 한 분도 오셨다. 주민대표 빈기수씨는 복숭아 수확 관계로 자리에 없다. 그러고 보니 작렬하는 뙤약볕 아래서도 눈코 뜰 새 없다는 복숭아 철이다. 움막 입구 문 옆에는 “경찰, 공무원, 한전직원 출입금지”라는 팻말도 걸려 있다. 또 움막 안벽에는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유행가 글귀가 아무렇게나 적혀 있다. △대체집행 이행강제금 소송 이어질 듯지난 6월20일 한전에서 주민 23명 등을 대상으로 움막 등의 철거를 위한 대체집행과 억대의 이행강제금 등을 청구했으며, 오는 7월 24일과 25일에 이와 관련된 재판이 줄줄이 잡혀 있는 와중에도 모여든 할머니들은 굵직한 옥수수를 삶아서 내고 갓 수확한 복숭아를 깎아 낸다. 손도 조금 떨리고, 목소리도 가느다란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들이다. 이들이 국책 사업에 대해 왜 이렇게 반대하며 대한민국 공직사회 전반에 대해 불신을 하고 있는지 의아하기도 하다. 직접 차를 몰고 온 제일 젊은 박할머니(가명)는 지난번 한전 용역과의 마찰 때 건장한 남자 다섯에게 붙잡혀 발버둥쳤으나 되려 폭력행사를 했다고 뒤집어썼다며 분해했다. 게다가 업무방해 등 혐의로 세차례에 걸쳐 법원으로부터 수백만원의 벌금을 물었다고 억울해 한다. 시집오고부터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는 송할머니는 이 일로 인해 마을주민들 간에도 마음이 갈라져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또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심할머니는 “아무래도 마을은 버릴 것 같다. 자네들이라도 한 번 반대를 해보게”라는 마을의 상어른의 말씀으로 시작한 이 일이 언제 끝날지, 어떻게 결론이 날지 긴 한 숨을 내쉰다.△송전선 아래 주거지 대책 마련 시급제23기 송전탑에서 이어질 송전선은 민가에서 최단 150여 미터 떨어져 있다. 육안으로는 가히 축 늘어지는 초고압 송전선을 대대손손 머리에 이고 살아갈 형국이다. 청도군 관계자는 “한전의 국책사업과 지역주민들과의 마찰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주민들이 다치거나하는 불상사가 없었으면 좋겠다.”며 답답해한다. 또 송전선 아래가 주거지일 경우 선하지의 영향 있는 구역을 넓게 적용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토지를 수용해 보상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학계의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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