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소방관들의 영결식은 그제 거행됐으나 정부가 할 일은 이제부터다. 순직한 소방관 5명의 춘천 합동분향소를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동료들이 무릎을 꿇고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를 눈물로 호소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방관의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애원이 또다시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된다. 소방관들의 근무환경은 살신성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는 표현하기 어렵다. 세상 사람들이 도망치는 불과 물속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 든다. 우리나라 소방관 한 명이 담당하는 국민은 1200명이 넘는다. 일본 820명, 미국 1075명에 비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게다가 주당 근무 시간은 56시간에 이르는 등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장비라도 걱정하지 않도록 정부가 챙겨주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재정 형편이 나쁜 일부 지역에서는 폐차 기한을 넘긴 구급차가 운영되고 있다. 대구의 소방헬기도 사고 헬기와 같은 30년이 넘은 기종이다. 정 총리가 조문했을 때 누군가가 총리님이 타는 차는 몇 년 된 것이냐고 물었다. 관용차는 10년이면 폐차수준이지만 헬기는 30년이 넘어도 하늘을 날아야 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한국의 자화상이다.그뿐만이 아니라 소방관들은 쇼핑몰에서 자기 돈으로 소방장갑을 비롯한 장비를 사서 써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력난에 장비난까지 겹치니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나섰다 숨지거나 다치는 소방관이 한 해 300명을 넘게 된다. 소방관의 직업 만족도가 바닥권이고 이직률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경찰 등 특정직 공무원을 모두 국가직으로 운영하면서 유독 소방공무원만 중앙과 지방으로 이원화한 점이다. 일사불란한 재난대응이 어려움을 알면서도 안전행정부가 소방관들의 국가직 전환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만여명에 달하는 소방관 대다수가 지방직인 까닭에 소속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인력보충이나 장비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심한 현실을 바로잡는 방안은 국가직 전환뿐이다. 소방관들은 유서를 써서 서랍 속에 넣어 두고 있다고 한다. 소방 공무원 중 상당수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알코올사용장애 등 각종 장애에 시달리고 있을 정도이다. 조문현장에서 생생한 증언을 들은 정 총리가 직접 국가직 전환은 물론 소방장비의 현대화, 생명수당 현실화 등 홀대 받아 온 현안들을 챙겨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