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중에 앞 못 보는 여인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걸어가고 있다. 손에는 등불을 들고 간다. 마침 지나치던 사람이 그 장면을 보고 말했다.“참 어리석기는. 앞도 못 보면서 힘들게 등불은 무슨 소용이 있다고 들고 다니는가” 앞 못 보는 여인이 정색하고 말했다.“이 등불은 당신이 나와 부딪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들고 다니는 것이랍니다.”여인의 등불은 남을 위한 ‘배려’요 ‘섬김’이었던 것이다. 을미년의 마지막 달력 한 장 남은 지금이 바로 ‘배려’와 ‘섬김’의 계절이다. 밤이나 낮이나 추위에 떠는 사람들, 몸에 병이 깊어 더 춥고, 외풍이 센 방에 난방을 하지 않아서 뼛속이 저미도록 몸서리나게 추운 이웃들에게 배려가 필요하다.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의 집, 편부모의 집, 상이용사의 집, 복지시설들에 있는 사람들처럼 도움이 절실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이 가야 제대로 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누구의 도움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제때에 돌보아 주는 관청이나 정치인이나 부자들을 본 적이 없다. 어느 해 없이 그들은 딱한 이웃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우이웃들이 쓰러지지 않고 버티어 온 것은 착한 서민들의 온정 때문이었다. 올해도 고단한 이웃들을 보살피는 것은 그들보다 그리 낫지도 않은 서민들의 몫이다. ‘과부사정은 과부가 더 잘 안다’는 말 그대로다.칼날처럼 매서운 추위에 떨고 있는 소외계층의 겨울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밥을 굶어 본 적이 있는가. 빈창자를 끓어 안고 잠을 청할 때의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라도 제공해온 무료급식소마저 운영비 부족으로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공원에서 매주 무료 급식을 하던 한 단체는 최근 공원을 새단장했는데 무료급식 탓에 미관을 해친다며 구청에서 중단했다. 서구의 다른 무료급식소는 하루 50만원씩 나가는데 최근들어 개인기부가 뚝 끊어져 얼마 전부터 중단했다.아파트 음식물쓰레기통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할 때가 가끔 있다. 마늘이 자루에 든채 버려졌다. 말인 즉 시골에서 시어머니가 보내 온 것인데 까기 싫어서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멀쩡한 감자 채소 콩나물 등이 봉지채 뜯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시장이나 슈퍼에서 깐 마늘, 껍질을 벗긴 감자, 다듬은 콩나물만 사 먹는 호사스런 버릇 때문이다. 멀쩡한 고깃덩어리나 깨끗한 생선이 버려져 있을 때도 있다. 모두가 무료급식소로 갔으면 귀한 식자재가 돼 굶주린 배를 채웠을 것이다. 얼마전에는 묵은쌀 한 포대를 누군가가 내 놓았다. “필요한 분 가져 가세요”라는 쪽지와 함께.2002년 미국 에모리대학의 정신의학 행동과학연구팀이 ‘사회적 협력에 의한 신경계의 기초’라는 특별한 논문을 발표했다. 내용인즉 “사람이 서로간에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것은 선한 행동이 사람의 뇌에서 즐거움을 유발시키는 신경조직을 최고조로 활성화시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것을 들어 남을 도울 때 아깝다는 생각보다 즐거움이 넘쳐난다는 뜻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은 많이 베푸는 사람’이란 말이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말을 옮겼더니 모두들 좋아한다.부처님의 가르침에 ‘팔복전(八福田)’이란 것이 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우물을 파고, 다리를 놓으며, 길을 닦고, 부모를 공경하며, 병자를 돌보며, 재난당한 자를 구제하고, 차별없이 가르침을 펴고, 외로운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 ‘팔복전’이다. 여기서 ‘복전(福田)’이란 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복밭, 복을 짓는 밭이다. 복밭을 깊이 갈고 씨를 뿌려 가꾸어야 복을 받는다. 복 받을 짓을 해야 복을 거둘 수 있다. 한해의 마지막인 12월로 접어들었다. 올 한 해 무엇을 하며 달려 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나는 누구를 위해 복밭을 일구며 살았는지 푸른달빛 아래서 따져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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