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선거에 ‘돌려막기’식 결과가 나왔다.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끝에 박유기 후보가 최종 당선됐다. 1·2차 투표 모두 온건파 對 강경파의 대결이었지만, 결과는 강경파의 승리로 끝났다. 박유기 신임 노조위원장은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금속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 가운데서도 최 강성 노조로 손꼽힌다. 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도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 출신이다. 한 위원장은 이른바 쌍용차의 ‘옥쇄파업’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총위원장까지 올랐다. 1984년 현대차에 입사한 박 위원장은 2006년에도 현대차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당시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이끈 인물이다. 역시 그도 산별노조 집행부의 위원장까지 오르게 된다. 박 위원장의 ‘컴백’은 10년전 파업에 목숨을 걸었던 강성 현대차 노조 시절로의 회귀가 불가피함을 뜻한다. 현대차 노조가 ‘동귀어진(同歸於盡)’하고 있다고 보는 우려는 당연하다. 현대자동차는 단일 사업장으론 국내 최대 규모인 4만3000명의 노조원을 두고 있다. 민주노총 주도 파업에 현대차 노조가 참여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파업 규모, 성패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현대차 노사협상은 금속노조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계 전반에도 영향을 줄만큼 파급력이 크다.최근 십수년간 현대자동차 노사협상이 해를 넘긴 사례는 없다. 사 측은 쉽사리 노조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더 이상 퍼주기식 협상을 하기에는 경기상황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절박함의 방증이다. 박유기 위원장의 등장으로 상황은 좀더 어렵게 전개될 개연성이 높다. 노사협상이 지연되면서 이번 선거는 노조원들 불만이 표출된 결과로 보여진다. 하지만 경기절벽에 직면한 상황에서 노조가 ‘돌려막기’식으로 강성 집행부를 택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노조가 가진 전가의 보도 같은 ‘파업’ 카드를 빼들 가능성이 매우 짙어지는 이유다. 국내 강성노조 파업의 원조격은 현대중공업 노조다. 지난 1980년대 말-1990년대 중반까지 현대중공업은 강성 파업으로 몸서리를 쳤다. 당시 현중 노조는 ‘골리앗 크레인 파업’으로 악명을 떨쳤다. 선박 조립용 주 크레인(골리앗 크레인)에 올라 100여일씩 파업을 벌이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현대중공업은 이후 무려 19년간 ‘無파업’기록을 세운다. 하지만 근 20년만에 강성 노조집행부가 부활하면서 지난해 이 기록은 허무하게 깨지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무파업기록이 깨지면서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유례없는 세계 해운경기 불황에다 수주 부진 등이 겹쳐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회사가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연속 무파업 기록이 참으로 부질없는 애착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무파업을 위해 그 동안 부단하게도 애를 썼다. 회사가 잘 나갈때나, 그렇지 못할때도 노조와 성과를 공유했다. 연말이면 각 부서 회식비로 50억원을 풀어 노조원들을 달랬다. 임단협이 타결될 때는 300-500%씩을 타결격려금 또는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노조원들에게는 ‘아! 옛날이여’가 됐지만 사 측의 퍼주기가 지금와서는 독이된 셈이다. 지난 11월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6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근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이 경영난으로 구조조정에 집중하면서 발생한 결과다. 이를 틈타 중국 조선소들이 전 세계 수주량의 80%를 독식하는 상황이 됐다. 지난 20년간 세계 조산업산업을 호령해온 ‘조선왕국 코리아’의 위치가 가물가물해지고 있다.글로벌 경기상황이 불투명하고, 기업이 어려워지면 노사가 힘을 합쳐 ‘생존’을 걱정해야한다. 우리나라 노조는 이 같은 상황이 되면 반대로 ‘강성노조’들이 더욱 힘을 쓰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생산성 향상이나 합리적 고용방안 창출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기 보다는 ‘강한 노조’로 결속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래서는 위기 대응이 불가능하다. 자칫 ‘공멸’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너죽고 나죽자는식의 ‘동귀어진(同歸於盡)’하는 꼴이되는 것이다.정부의 노동개혁 입법이 사실상 연내 처리가 불가능해졌다. 노동개혁 5대 입법은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명료화 등을 비롯해 파견법(파견업무 확대), 기간제법(비정규직 근로자 사용기한 연장) 등이다.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고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필수조건이다. 현대차 노조 같은 강성노조가 노사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파업에 나설때면 어김없이 “진전된 안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노동개혁안 입법처리를 두고 야당측도 “진전된 안이 없다”며 합의처리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노조원들의 권익, 나아가 국민의 권익을 위한 길에 ‘강성’기조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금은 강성기조로 결속을 다질때가 아니라 합리적 결속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