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건설경기가 뿌리째 흔들리고있다.
아파트 미분양 사태는 속출하고 관련업계 마저 길거리에 나 앉았다.
최대 위기다.
어쩌다가 이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다.
▣대구 `문 닫는` 건설사 속출
고금리와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로 인해 폐업을 신고한 대구와 경북의 건설업체가 237%나 급증했다.
지난 10월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25일 현재 대구·경북 종합건설사의 폐업 신고건수(변경·정정·철회 포함)는 38건으로 전년 같은기간 16건 보다 2.37배나 증가했다.
작년 한 해 신고건수 20건에 비해서는 2배에 육박한다.
대구의 종합건설사 신고건수는 16건으로 전년 같은기간(3건)에 비해 무려 5.33배나 폭증했다.
경북은 22건으로 13건 대비 1.7배 증가했다.
종합건설사 폐업이 급증한 것은 아파트 신규 분양 감소가 주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토부 자료를 보면 올해 1~8월 대구의 주택 착공 물량은 1067가구로 전년 동기(1만1098가구)에 비해 90.4% 감소했다.
같은기간 아파트 분양은 34가구로 전년 동기(8500가구)보다 99.6%나 줄었다.
지역 전문건설사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들어 10월25일까지 대구·경북 전문건설사의 폐업 신고건수는 219건으로 작년 같은기간 169건 보다 1.3배 증가했다.
대구는 63건으로 40건 대비 57.5%, 경북은 156건으로 129건 대비 20.9% 각각 늘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1만가구가 넘는 미분양 물량으로 신규 아파트 분양이 전면 스톱되면서 공사 수주가 급감한데다 고금리에 원자잿값까지 오르면서 문을 닫는 건설회사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대구 신규 분양 `제로`
미분양 물량 적체에 따른 신규 분양 `제로`(0) 여파로 대구의 분양 관련 업계가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20일 대구지역 분양·광고대행 업계에 따르면 올들어 신규 분양 아파트(주택도시보증공사 분양보증 기준)는 단 1가구도 없다. 지난 5월 달성군에서 선보인 34가구는 후분양 단지다.
1998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분양 제로` 현상이 나타나자 관련 업종인 분양·광고대행, 인테리어업, 설계업체 등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년간 개점 휴업 상태로 존폐 위기에 놓이자 대구와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A광고회사는 20명의 직원을 지난 6월 절반으로 줄였지만 이마저도 버거운 상황이다.
역외업체들의 진출로 지역 업체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외지 건설사들의 지역 업체 하도급률이 극히 저조한데 따른 것이다.
2019년부터 올해까지 대구 신규 분양 단지 151개 중 외지 건설업체 현장은 120곳이다.
지역 광고업체가 분양 광고를 수주한 단지는 26곳(21.7%)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지만 기댈 언덕도 없다.
대구시가 지역 건설산업 활성화를 위해 역외업체의 지역건설공사 참여 시 공동도급과 하도급 비율을 높이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분양대행이나 광고, 인테리어업은 하도급 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뒷전으로 밀려난지 오래다.
신규 분양 때 일감을 확보해야 하는 관련 업계의 사정을 고려한 대구시의 적극적인 행정지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분양 관련 업계는 내년 신규 분양에 나서는 후분양 단지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이마저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20곳의 후분양 예정 단지 대부분이 외지 건설업체 물량이기 때문이다.
최종태 대구경북광고산업협회장은 "내년에도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산업 기반이 무너지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대구 미분양 사태…
대구 지역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건설·부동산 대출 비중이 높은 새마을금고, 저축은행 등 이 지역 제2금융권의 부실 우려가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대구는 세종, 인천 등과 함께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가장 많이 하락한 지역인데 올 상반기 집값이 다소 반등한 세종, 인천과 달리 여전히 부동산 시장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 안팎에선 부동산 경기 부진에 따른 제2금융권 대출 위험 모니터링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이 지역 공동주택 미분양 물량은 5월 기준으로 2018년 194가구, 2020년 1159가구에서 올해는 1만2733가구로 급증했다.
5월 기준 미분양 물량은 전국(6만8865가구) 전체 물량 가운데 18.5%로 가장 많다.
미분양 물량은 지난해 9월 1만539가구로 1만 가구를 넘어서고 지난 2월 1만3987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다소 소진됐다.
하반기 후분양 공급이 예고돼 있어 미분양은 다시 늘어날 전망이다.
공사가 끝난 뒤에도 분양되지 못해 이른바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5월 기준 2018년 114가구, 2020년 28가구로 감소하다 올해는 919가구로 폭증했다.
주택매매 가격 하락률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4월 사이 14.2%로 전국 평균(7.5%)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역 한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쌓여 있는 미분양에 매매가격과 함께 전세 가격 동반 하락으로 수분양자 사이에서 분양 잔금을 마련하지 못해 입주를 포기하는 사례도 나타나면서 자금 여력이 취약한 일부 건설회사를 중심으로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신규 주택 건설사업계획 승인을 전면 보류하는 등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비은행 금융기관 부실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중·남구, 포항·경주시 `미분양관리지역`
대구 중구와 남구,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의 미분양 관리지역 지정 기간이 연장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날 열린 제83차 미분양 관리지역 선정 회의에서 대구 중구와 남구,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 등 4개 지역의 미분양 관리지역 지정 기간을 내년 1월9일까지로 연장했다. 이들 지역의 당초 지정 기간은 이달 9일까지였다.
대구의 10월 말 기준 미분양 아파트는 1만376가구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많으며 남구가 2329가구, 중구는 1039가구다.
포항시의 미분양 물량은 2873가구, 경주시는 1418가구다.
미분양 관리지역은 지난 2월부터 요건이 강화됐다.
미분양 주택이 1000가구 이상인 시·군·구에서 미분양 증가, 미분양 해소 저조, 미분양 우려 등의 요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되면 지정된다.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되면 주택을 공급하려는 사업 예정자는 분양보증을 발급받기 위해 예비심사나 사전심사를 받아야 한다.
▣올해 대구 부동산시장 이슈
대구지역 부동산전문기업인 ㈜빌사부는 20일 올해 대구 부동산시장의 이슈로 `역대급 입주 물량`, `신규 분양 제로`, `미분양 폭탄` 등을 꼽았다.
첫번째 이슈는 아파트 입주 물량 폭탄이다.
올 한해 입주 아파트는 3만5000여가구로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물량이 몰렸지만 우려했던 입주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입지가 불리하거나 분양가격이 높은 단지, 외부 투자자가 많이 유입된 단지를 중심으로 입주 시점 매매가격 하락 및 전세가격이 폭락하기도 했다.
두번째는 신규 분양 물량 `제로`(0)가 꼽혔다. 대구는 지난 5년간 12만6000가구가 공급됐는데 올해 분양 승인된 물량은 달성군 다사에 34가구가 전부다.
사업시행사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막힌데다 경기침체, 분양가 상승 등으로 분양률이 담보되지 않아 분양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세번째는 특례보금자리 대출의 시행이다.
정부가 DSR 적용으로 대출이 막혀 집을 사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택가격 9억원 이하인 차주가 소득제한 없이 최대 5억원까지 LTV(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한도 내에서 대출이 가능한 상품을 내놨다.
금리가 시중금리보다 낮은데다 고정금리를 적용해 인기가 높았다.
네번째는 아파트 거래량 회복이다.
대구의 아파트 거래는 2020년 5만1395건, 2021년 2만1231건이었으나 2022년에는 1만1045건으로 부동산 통계가 도입된 이래가 가장 낮은 거래 물량을 기록하다 올해 월 평균 아파트 거래량이 1900건으로 전년(920건)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다섯번째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미분양 물량`이다.
전국의 미분양주택은 5만8299가구인데 대구는 1만0376가구로 전국 물량의 17.79%를 차지한다.
여섯번째는 미분양 해소를 위한 조건변경과 할인 분양이다.
수성구 만촌 자이르네의 경우 분양가의 17~25%를 할인하는 특별분양을 실시, 서구 서희스타힐스는 10%, 두류역 서한이다음은 중도금 무이자에 15% 할인으로 분양을 완료했다.
일곱번째 이슈는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전세사기와 역전세난이다. 특별법이 시행되기는 했지만 실효성이 없어 아직도 많은 피해자가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전세가보다 낮은 역전세난도 심각하다. 대구는 입주 물량이 일시에 쏟아지며 전용 84㎡ 신규 아파트 전세보증금이 1억원대까지 급락했다.
기존의 비싼 임대료의 세입자들은 신규 아파트로 옮기면서 구축 아파트의 임대인은 전세보증금 반환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송원배 빌사부 대표는 "내년 상반기 중 예상되는 금리 인하와 함께 전세 세입자들이 매수자로 돌아서고 입주 아파트가 정리되는 과정을 밟는다면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안정될 수도 있다"며 "대기 중인 후분양 아파트의 신규 분양가와 분양 결과가 내년 대구 분양시장의 분위기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