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인류의 문자가 상형문자에서 시작해 자음문자(Abjad)와 모음부 자음문자(Abugida), 알파벳으로 진화했음을 살펴봤습니다.
한자는 이런 궤도 밖에서 탈바꿈 없이 내용만 확장한 특이한 문자입니다.
세계의 각종 언어 연구기관인 에스놀로그(Ethnologue)에 따르면 한자까지 합쳐 세계에는 293개의 문자가 4,000여 언어에 쓰이고 있으며, 이 밖에 3,000여 언어가 문자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B,C. 2세기경 한자가 들어오기까지는 어떤 문자가 쓰였는지, 혹은 문자라는 것이 아예 없이 살았는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훈민정음 창제의 배경을 짚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조상들의 고유 문자에 대한 갈증
우리 민족은 한자가 들어온 이후부터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577년 전까지 1,500년 이상을 한자만으로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는 우리말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어서 둘 사이에는 마찰이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특수 계층이 한자를 배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해도 우리말과 한자 표현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예컨대 ‘君子懷德小人懷土’라고 써서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한다’는 뜻은 표현할 수 있지만 막상 소리 내어 읽어 보면 우리말 같지는 않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君子는 懷德하고 小人은 懷土하니’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한글이 없었으므로 한자음을 빌어 ‘君子隱 懷德爲古 小人隱 懷土爲彌’로 고쳐 썼습니다. 여기서 隱은 ‘는’, 爲古는 ‘하고’로 읽었습니다.
爲를 ‘하’로 읽은 것은 이 글자의 훈(訓, 뜻)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런 글자를 ‘구결(口訣, 입겻)’이라 불렀습니다.
이후 입겻을 발전시켜 이두와 향찰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모두 한자로 써야 했으므로 한자를 모르는 대다수 백성은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가림토’라는 문자가 있었다지만, ‘정말 있었다면 이런 고생을 했을까?’ 하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훈민정음해례 서문에 나타난 세종의 심정
훈민정음해례 서문 첫머리에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通’이라 한 것은 ‘우리말은 중국말과 달리 한자로 옮길 수 없으므로 한자로는 통할 수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학자들은 그러나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통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합니다. 고등학교 교과서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틀린 해석입니다. 중국과 우리말이 다르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문자로는 서로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필담으로 얼마든지 통합니다.
결국 우리말을 한자로 표현하지 못해 백성이 겪는 불편을 풀어 주고자 한 것이 세종대왕의 목적이었으며, 이것이 훈민정음 창제의 배경이라 할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노심초사
세종대왕이 얼마나 백성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는지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건국 초기에 문란해진 도덕과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즉위한 후 8년까지는 법률 정비에 힘썼고, 10년째 되는 해에는 효행록을 편찬해 백성들이 읽고 따르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효행록이 한자로 기록돼 있어 읽지 못하는 백성이 많았습니다.
결국 범죄가 기대만큼 줄어들지 않자 백성들이 한자를 못 읽기 때문이라고 보고 세종 14년에는 효자, 충신, 열녀의 행실을 그림으로 표현한 삼강행실도를 전국에 배포했습니다.
세종은 그래도 범죄가 크게 줄지 않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습니다.
결국 백성이 읽을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법과 도덕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을 것입니다.
문제는 ‘성리학에 빠져 있는 사대주의 신하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노골적으로 간섭하려 드는 중국의 위세를 어떻게 피해서 가느냐’였을 것입니다. 요사이 중국 눈치를 보느라 국익을 외면하는 일부 정치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이를 모두 이겨냈습니다.
더 나아가 문자를 쉽게 배우지 못해 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죄를 짓는 백성이 비단 조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어린아이라도 쉽게 배워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사투리 발음도 표기할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은 훈민정음해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을 반포도 하기 전인 1443년 동국정운(東國正韻)이란 자전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연이어 명나라 운서(韻書)인 홍무정운(洪武正韻)에 훈민정음으로 음을 달아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이란 대작을 편찬토록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훈민정음의 사양은?
세종대왕이 이렇게 사실상의 세계 문자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사양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완성된 작품을 보고 사후적 판단을 해보면 아래와 같은 사양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발음의 표기 방식이 아니라 발음하는 방법을 보여라.
세계의 여러 문자는 국가별 혹은 지방별로 고유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고유의 글자를 도입하든지, 아니면 기존 글자를 좀 고치거나 특수 부호를 붙여 해결했습니다.
반면 훈민정음은 사람이 날숨을 조절해 가며 구강의 특정 부위를 자의로 진동시켜 원하는 발음을 내는 방식을 직관적이고 간단한 그림으로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해 발음과 글자를 1:1로 맞추느냐, 아니면 글자를 조합해 새로운 발음을 표현하느냐의 차이입니다.
둘째, 글자마다 고유의 음가를 갖고, 글자를 조합하더라도 음가를 유지하라.
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본 글자 28자는 불변의 음가를 유지합니다.
이들을 조합해 어떤 발음을 표현하든 기본 글자의 고유 음가는 물리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셋째, 글자의 모양이 간단하고 구별이 뚜렷해야 한다.
훈민정음 자모는 모두 점(ㆍ)과 원과 직선으로 돼 있어 쓰기 쉽고 기억하기도 쉽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한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훈민정음과 무엇이 다른지, 왜 다르게 만들었는지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