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 언론인 친구 = 국가개조론이란 말이 나오네. 이번에 숨진 아이들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나라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사람이 많네.나 = 그래야지. 이젠 이런 터무니없는 사고가 안 일어나게 해야지. 그런 걸 막을 수 있다면 뭐든 해야지.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을 미루더라도 국민안전을 우선으로 해야지.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잘 살면 뭐 하노. 죽은 다음에.친구 = 그런데 국가개조가 말처럼 쉬울까? 국가개조, 의식혁명 같은 거대담론일수록 이중성이 있다는 말도 있어. 누구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실천은 주저하는 거.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거, 그게 거대담론이라는 거지. 나 = 아니, 공무원들 자기 본본 제대로 하도록 정부조직 개편하고, 이번 사고 같은 대형 재난 일어나면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국가적 컨트롤 센터 만들고 그러겠다는데 왜 발목을 잡냐?친구 = 그런 걸 하지마라는 게 아니지. 당연히 해야 할 일 하면서 국가개조라느니 의식혁명이라느니 거창한 구호부터 내거는 게 옛날 농촌 계몽영화 다시 보는 거 같아서 그래.나 = 계몽이 필요하면 해야지. 그런데 너라면 어떻게 할 건데? 뭘 하고 싶은데?친구 =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갔을까? 아직 내 안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는 글 귀 기억나지? 요 며칠 사이 파블로 네루다의 이 시가 자꾸 생각나네. 나 = 노벨문학상 받은 칠레 시인? 알지. 작년인가, 교보문고 건물에 그 시가 걸려있었지.친구 = 나는 우리 모두 ‘나였던 그 아이, 내 속의 그 아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 = 무슨 말 하려는지 짐작이 안 되는데? 친구 = 아이들은 가르치는 대로, 배운 대로 하지? 네루다가 말한 ‘나였던 그 아이’는 이런 아이일 거야. 순수하고 욕심 없고…. 그렇지만 자라면서 내 속에서 그런 아이는 사라지고 남은 무시하고 자기 자신만 아는 ‘탐욕스런 어른’만 남는 거지. 그런 어른들이 모인 사회, 그런 어른들만 있는 사회에서는 이번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야.나 = 그것도 거대담론인 것 같은데? 그런 것도 계몽영화의 주제 아니었나? 친구 =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남에게 책임을 미루는 건 아니지. 이렇게 생각해봐. 지금 이번 사고를 두고 모두들 어른들의 책임이라며 반성하자고 하잖아. 어른들이 못 나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어른들의 책임 중엔 물론 정부의 책임이 크지. 그렇지만 개인으로서의 어른들 책임도 크다고. 정부는 아까 말한 것처럼 조직을 바꾸고, 공직사회를 개편하는 것들로 책임을 진다지만 개인은 어떻게 책임 질 건데? 분향하고, 성금 내는 거? 그것만 하면 우리 책임이 면피가 되나? 우리 개인은 무얼 해야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는 걸 막을 수 있냐? 우리도 본분,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다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난 그게 아이들에게 우리가 본을 보이고, 아이들이 그걸 따르도록 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건 결국 우리 속의 순수함,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하는 거, 우리 속의 그 아이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거라고 보는 거지. 나 = 실천은 어떻게 하려고?친구 = 쉽지. 아이들 보는데서 무단횡단 안 하는 거, 쓰레기 안 버리는 거, 아니 아이들 보는데서 쓰레기 줍는 거, 이런 것들부터 제대로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런 것들에서 시작하는 거지. 어른들이 이런 식으로 책임을 진다면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이 오히려 더 쉬울지도 몰라. 돌아가는 것 같지만 확실히 가는 길이니까. 나 = 말 되네. 먼저 시작해봐. 말은 나에게만 하고.(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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