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선 /  언론인 6.4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는 무승부다. 어느 쪽 손도 들어 주지 않은 ‘국민의 절묘한 선택’이라는 진단이 대세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사뭇 엇갈리는 분위기다. 여권은 참패의 위기를 선방했다며 자위하고 야권은 차려 준 밥상도 못 챙겨 먹었다며 아쉬움을 토해 낸다.‘박근혜 심판론’과 ‘박근혜 마케팅’이 맞붙는 통에 정작 지역 현안은 실종된 엉뚱한 지방선거였지만 어쨌든 국민의 심판은 내려졌다. 네가 잘났느니, 내가 잘났느니로 싸우느라 용쓰지 말고 서로 힘을 합쳐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라는 준엄한 명령이 바로 그것이다. 마침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우리 주변의 적폐를 일소하고 선진 사회로 거듭나는 일이 지상 과제로 떠오른 터다. 박 대통령도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갈라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국가 개조’를 공언했다.하지만 작금의 양상은 적이 실망스럽다. 저마다 남 탓만 하며 싸움질이다. 도무지 달라진 게 없고 그럴 기색도 없다. 박 대통령부터 그렇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거듭 사죄하며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못 박았지만 실제로 달라진 모습은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이번 개각과 청와대 비서진 개편 역시 ‘수첩 인사’가 여전히 위력을 떨치면서 친정(親政) 체제가 더 강화됐다는 평이다.사사건건 발목 잡는 야당에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국정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러나 비상사태다. 백척간두에 선 절박한 심경으로 모든 것을 내던지고 승부를 걸 때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대로인 채 남들한테만 변하라고 몰아대서야 ‘난세의 지도자’라 할 수 없다. 국민을 위해 일할 재목인지 아닌지는 아랑곳없이 애오라지 충성심만이 인사의 유일한 잣대라면 ‘대통합 공약’은 한낱 대선용 구두선이던가? 지금이야말로 내 사람, 네 사람 안 가리고 중용하는 과감한 용인술이 절실한 시점이다. 세월호 사태의 주범을 ‘관(官)피아’로 보고 공무원을 개혁의 대상으로만 몰고 간 대목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공무원사회의 ‘철밥통’과 ‘비리백화점’을 비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공무원은 그러나 개혁의 대상인 동시에 개혁의 주체임을 명심해야 한다. 세계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이 불과 반세기 만에 남부끄럽잖은 나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성실하고 우수한 공무원들의 강한 추진력이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해선 안 된다. 혹시 대통령 혼자, 또는 몇몇 측근만으로 사회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만저만한 오만이 아니다. 특히 국가 개조 같은 과제는 대통령에서 최말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무원이 혼연일체로 밀어붙여야 비로소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게다가 ‘용퇴’라는 그럴듯한 포장을 씌워 쉰 안팎의 한창 나이에 내쫓아 놓고 일만 터지면 전가 보도인 양 ‘전관예우’ 타령이라니.... ‘낙하산 인사’의 총본산인 청와대와 관복을 벗자마자 변호사로 변신해 현역 때의 몇 배, 몇 십 배씩 챙기는 검찰이 관피아와 전관예우 타파의 선봉에 선 것도 어처구니없다. 정녕코 관피아와 전관예우의 폐단을 없애려면 공무원 정년부터 보장해야 한다. 조기 퇴직이 부득이하다면 학계나 연구소 등에서 전문성을 살릴 길을 터 주는 게 바람직하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공무원사회를 흔들지 못하도록 확실한 신분 보장도 요긴하다. 사람을 탓하기에 앞서 그릇된 제도나 관행부터 뜯어 고치자는 얘기다. 세월호 사태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무능으로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정부를 몰아치다 못해 황당무계하게 대통령 하야까지 외친 야권도 남 탓만큼은 절정의 고수다. 그러나 대통령제에서 걸핏하면 ‘대통령 퇴진’ 카드를 꺼내는 것은 정말 못된 버르장머리다. 대형 재난의 뒷수습이 마뜩찮다고 그때마다 대통령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인데도 정략 차원에서 ‘박근혜 심판론’을 선거판에 들고나왔다가 약발이 먹히지 않아 외려 머쓱해졌다.이런 맥락에서 일부 야권 인사의 공동 책임론은 꽤 음미할 만하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측근인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당선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는 야당에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며 “이제는 야당이 집권 여당에만 책임지라고 문제 제기를 하는 식의 비판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선에 성공한 안희정 충남지사도 “이번 사태에 대한 참회는 여야, 정파,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해당된다”며 진보와 보수가 서로 헐뜯지 말고 미래를 위한 정책 경쟁을 벌일 것을 제안했다.이들의 용기 있는 발언과 함께 항간에서 ‘다 내 탓이오’를 읊조리며 자기 주변의 작은 일에서부터 비정상을 바로잡으려는 이들이 세월호 사태 이후 부쩍 늘어나고 있는 데에서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을 본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노상 남 탓만 하며 갈등을 부풀리느냐, 아니면 내 탓부터 인정하고 다함께 해결책을 찾느냐가 후진 사회와 선진 사회로 갈리는 길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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