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 언론인친구 = 압구정동의 1인당 국민소득은 얼마나 될까? 나 = 못 잡아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의 두 배는 되지 않을까? 대한민국 최상류층이 모인 곳이니까, 더 되면 더 됐지 그보다 못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근데 그건 왜?친구 = 마침내 압구정동의 지갑도 닫힌 것 같아서. 압구정동 사람들마저 돈을 안 쓰면 대한민국 내수 경기는 끝장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 = 세월호 참사로 소비가 전반적으로 줄었다는 기사는 봤다만 압구정동 소비가 줄었다는 이야기는 처음인데? 무슨 자료가 있는 거야?친구 = 거기 백화점 식품부에서 조그마한 가게 하는 친척이 있는데 하루 평균 100만원 안팎이던 매출이 5월 중순부터 8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는군. 6월에는 60만원도 못 판 때가 있다는 거야. 자기네만 그런 게 아니고 부근 입점업체 대부분이 그렇대. 매장 분위기도 전에 없이 썰렁해졌다는 거야. 이러다간 직원 내보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더라고. 백화점 측에서도 입점업체 점주들을 매일 불러모아놓고 매출을 올리라고 닥달한대. 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지. 매출 독려하는 게. 나 = 압구정동 지갑도 닫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네. 왜 그런 거 같아?친구 = 글쎄, 세월호 여파일 수도 있겠고, 경기가 안 좋아질 거라는 예측 때문일 수도 있겠지. 물 빠질 때 조개들이 일제히 입 다물고 모래 속 깊이 숨어버리는 것처럼, 미리 혁대 졸라맨 것인지도 모르지.나 =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압구정동 사람들이 경기 걱정 때문에 돈을 안 쓴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대한민국 최상류층에 강남의 강남 사람들인데. 사실이 그렇다면 더 큰일이고. 그런데, 이유가 뭐든 부자들이 돈 안 쓰면 정말 난리인데…. 몇 달 전에 현대경제연구원이 이런 발표를 했어. 고소득층 가구가 한 달에 26만4천원을 더 쓰면 국내총생산(GDP)이 연평균 7조2천억 증가하고 일자리가 연간 16만8천개가 새로 생긴다고 말이야. 근데, 부자들이 돈을 더 쓰는 게 아니라 소비를 줄이고 있으니 일자리가 늘기는커녕 줄어들 게 분명하지. 친구 = 아까 말했잖아. 우리 친척이 장사가 이렇게 계속 안 되면 직원 자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고 말이야. 한 달에 백만원 남짓 받는 그 사람들 잘리면 어떻게 먹고사나? 서민경제 붕괴가 눈에 보이는군. 나 = 그럼 부자들도 망하는 거지. 서민 없이 부자가 있을 수 있나? 대한민국 경제도 더 암울해지는 거지. 그림이 빤하네. 어쨌든 지금으로선 부자들이 돈을 더 쓰도록 하는 게 경제를 살리는 방법이겠네. 서민들은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으니 말이야. 친구 = 그렇다고 서민소득 증대를 외면해서는 안 되지. 서민이라고 맨날 부자들 떡고물 흘리는 거 기다리게 해서 되겠어?나 = 서민소득을 어떻게 늘리나?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친구 = 새로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최경환씨가 말은 그럴 듯하게 했어. 성장률 몇 %를 따지는 것보다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관심을 두겠다고 말이야. 대기업과 일부 계층이 그 과실을 다 갖고 가는 성장 정책보다는 서민들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 아니겠어? 그쪽으로 정책수단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니 한 번 지켜봐야지. 나 = 그리고 국민들이 경제가 잘 될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지. 지당한 말씀이야. 웃음기 사라진 지 오래인 국민들 얼굴에 엷은 미소라도 짓게 하려면 우선 희망이라도 있어야 하지. 친구 = 정치가 민생의 발목을 붙잡지만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그리고, 압구정동 국민소득과 비 압구정동 국민소득의 차이는 다섯 배 정도일 것 같군.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갖고 간다는 얼마 전 경제신문 통계가 맞다면 말이야. 한 번 계산해봐. 내 말이 맞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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