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재 / 언론인절도는 원초적 욕망의 구현이다. 인간은 원하는 것을 취하려고 한다. 타고난 본능이다. 사회는 이런 욕망을 억제한다. 방치하면 질서와 안정은 깨지고 만다. 그래서 부모 또는 선생님은 어린이에게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것도 모자라 종교의 힘까지 빌린다. 십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고 훈계한다. 사람은 욕망과 규범 사이에서 고민한다. 이런 갈등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이 대표적인 상징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줬다는 이유로 쇠사슬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형벌에 처해졌다. 언제 어디서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고단하다. 이들은 지배층이나 기득권층에 대해 불만을 품는다. 하지만 혁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힘의 한계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대신 작은 일탈을 꿈꾼다. 이들은 의적(義賊)을 향해 갈채를 보낸다. 지배층에 대한 통렬한 야유다.세계 곳곳에서 `아르센 뤼팽`같은 도둑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뤼팽은 부도덕한 지배층을 한껏 조롱함으로써 대리 만족을 제공한다. 뤼팽은 우연의 산물이다. 뤼팽의 저자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은 이런 추리소설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신문기자로 일하며 모파상 같은 작가를 꿈꿨다. 친구인 피에르 라피트(Pierre Lafitte)가 전환점을 제공했다. 라피트는 대중지 `쥬세투(Je sait Tout : 나는 모든 것을 안다)`를 창간하기 앞서 추리소설 연재 아이디어를 냈다. 그 당시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르블랑은 라피트의 거듭된 요구에 마지못해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를 써서 넘겼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르블랑은 뤼팽 이야기를 연작으로 쓸 생각이 없었다. 라피트는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를 읽자마자 큰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르블랑에게 후속편을 쓰도록 계속 종용했다. 르블랑은 난색을 표시하다가 후속편을 계속 썼다. 라피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1905년 `주세투` 5월호에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 가 실리자 대중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뤼팽은 르블랑의 손을 떠났다. 르발랑은 여러 차례 뤼팽을 죽이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독자들의 요구로 되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르블랑은 만년에 "너무 힘들다. 그는 어디든지 나를 따라다닌다. 그가 나의 그림자가 아니라 이제는 내가 그의 그림자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뤼팽의 인기 비결은 매력적인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다. 주로 악당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데다 언제나 밝은 성격을 드러낸다. 자유와 저항에 대한 동경을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뤼팽은 어릴 때부터 저항 의식을 드러냈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함께 귀족 친척의 신세를 지기 시작했다. 친척은 뤼팽 모자를 하인처럼 취급했다. 뤼팽은 어머니를 동정한 나머지 친척이 가보처럼 여기는 목걸이를 훔쳤다. 그의 나이 여섯 살 때다.뤼팽은 신사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미망인이나 고아를 돕는다. 후기 작품에서는 뤼팽은 애국자로 부각된다. 조국을 위해 외국인과 싸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멋진 도둑은 소설에나 등장한다. 현실에서 도둑은 늘 추한 모습을 보여준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유 회장 일가의 행적은 도둑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이 챙긴 범죄 수익만 2,000억원을 훨씬 웃돈다. 권리를 행사하면 책임도 지는 게 당연하다. 굳이 법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법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소명하는 게 맞다. 청해진해운을 비롯한 계열사에서 온갖 수익을 챙기다가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돌연 잠적하고 말았다. 미국의 이라크 진격과 함께 지하 땅굴을 전전했던 후세인과 비슷한 모습이다. `회장`이라는 직함이 아깝다. 좀도둑도 자신의 죄값을 기꺼이 치른다. 그의 도주 행각은 나치 전범들을 연상케 한다. 나치 전범들은 이른바 `쥐새끼 도주로(Ratlines)`를 통해 유럽에서 중남미로 도주했다. 은밀히 이동했기에 `쥐새끼`로 불렸다. 수장의 자세는 달라야 한다.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면 세모그룹 임직원들이 너무 불쌍해진다. 유병언씨에게 당부한다. "제발 회장답게 행동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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