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금융권 징계에 착수했다고 한다. 9개 은행·카드사와 전·현직 임직원 200여명이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이들 중 50여명은 이미 중징계 예고장까지 받았다고 한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사상 최악의 줄징계로 볼 수 있다.이번 조치는 그간 불거진 각종 금융사고와 비리에 대한 문책 성격이 짙다. 소중한 고객정보가 범죄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유출사고는 올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졌다. 고객 1억400만명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계좌번호가 송두리째 빠져나간 국민·NH농협·롯데카드의 사고가 대표적이다. 돈벌이에 급급해 고객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해온 묵은 관행이 화근이었다. 외부 정보유출을 막는 보안장비 구축도 인색했다. 보안 강화를 비용으로 인식해 투자를 소홀히 한 탓이다. 이런 보안풍토라면 유출사고는 또 터질 수밖에 없다.이 와중에 KB금융 경영진의 내분은 금융신뢰에 큰 금을 가게 했다. KB금융지주 회장과 국민은행장은 전산망 교체사업을 둘러싸고 막장 드라마를 연출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두 경영진 간의 불화가 사태의 불씨라는 해석도 나온다.하지만 정작 낙하산의 구습을 뿌리 뽑아야 할 곳은 바로 감독당국이다. 금감원 전·현직 고위직들은 민간 금융회사나 관련 협회의 감사로 줄줄이 내려간다. ‘금피아(금감원+마피아)’는 관피아 중에서도 가장 고질적인 유착구조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사들은 이들을 방패막이로 삼거나 로비 창구로 활용한다. 사상 최대 유출사고를 일으킨 카드 3사의 감사도 모두 금감원 출신이었다. 이런 풍토에선 금융당국의 감시감독과 처벌이 제대로 먹힐 리 없다. 따지고 보면 금융사의 잇단 사고와 비리는 오랜 유착 관행의 부산물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간과한 채 금융사에만 책임을 물으니 ‘남의 눈의 가시는 보면서 진작 제 눈의 들보는 못 본다’는 비판이 나온다.무더기 징계를 맞는 금융권은 환골탈태해야 한다. 땅바닥에 떨어진 금융신뢰를 회복하자면 스스로 자정의 메스를 대야 한다. 감독 책임을 방기한 금융당국도 뼈를 깎는 심정으로 내부 수술에 착수해야 한다. 금피아를 원천 봉쇄하고 고장 난 감독시스템도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한다. 금융권도 국가개조와 같은 대개혁이 절실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