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丙申年) 새해를 열자마자 서민들은 우울하다. 서민을 병신으로 보느냐는 자조섞인 말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일갈(一喝)해서 ‘여의도 금배지’ 분들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다. 국민들이 아무리 떠들어 본들 쇠귀에 경읽기다. 대통령까지 나서 민생법안 처리를 여러차례 호소도 하고, 주문도 했지만 끝내 도루묵이지 않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노동개혁 법안을 포함, 시급한 민생법안 처리를 외면한다면 역사의 죄인 이 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톤은 19대 국회 회기 마감을 앞두고 수차례나 나왔다. 국회는 그러나 대통령의 비판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오히려 불쾌하다는 반응만 보였다. 참다못한 대통령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수차례나 요구했다. 국회의장이 이를 거부하자 언론은 “대통령에 맞선 소신있는 국회의장의 기개”라며 일제히 치켜세웠다. 이 뿐만 아니다. 직권 상정 요구 이후 언론들은 “대통령이 국회를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쏟아냈다. 급기야 보수매체나 진보매체 할 것 없이 저간의 ‘대통령의 불통 정치’를 문제삼아 “소통을 단절한 대통령이 대의정치에 콩놔라 팥놔라할 자격이 있나”고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심지어는 “퇴임뒤 이름이라도 남길 궁리를 하라”며 독설에 가까운 조언까지 나왔다. 자신들 밥그릇이 달려있는 정쟁에만 목을 메달고 있는 국회. 대통령의 일갈을 깔아 뭉개는 언론. 이들 모두 동의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불통정치는 국정인사와 관련된 것들이나 당내 계파 싸움 등에서 주로 문제로 지적된다. 그 동안 희생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질책은 백번 수긍이 간다. 반면 이번 직권상정 요구 등은 민생과 직결된 정치 외적인 사안이다. 민생부터 살리자는 대통령의 호소를 평가절하부터 하는 시각은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국회가 제 밥그릇에만 혈안이 돼있는 동안 노동개혁법을 포함한 ‘서민 법안’은 ‘올킬’이다. 우선 지난 연말 대부업체 최고 금리를 연 27.9%로 제한하는 내용의 대부업법 개정안 국회 처리가 끝내 무산됐다. 최고 금리 제한이 풀리면서 대부업체에 의존하는 서민들이 연초부터 ‘이자 폭탄’ 위험에 직면한 것은 당연하다. 현행 대부업법은 최고 금리를 연 34.9%로 제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지난해까지 한시적이라 새해를 맞으며 자동적으로 효력을 잃었다. 제도 금융권을 이용하지 못하는 저신용 서민들은 그 동안 대부업체가 유일한 ‘비빌언덕’이나 다름없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대부업체 이용자 수는 261만 4000명이나 된다. 고금리에도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최후 안전판이 이제는 완전 사라진 셈이다. 노동계가 ‘개악’이라고 주장하는 노동개혁법안 중에는 서민들을 위한 깨알같은 조항들도 들어있다. 실업급여 상한액을 하루 4만3160원에서 5만원으로 올리는 법안이다. 이 법안 역시 국회통과를 못하면서 서민 실직자들을 울리고 있다. 이 법의 적용 수급대상자는 약 26만명.수급 자격 인정자 104만5000명 중 약 25%나 된다. 이들은 하루 6584원씩 손해를 보며 한달이면 20만4100원씩, 8개월간 158만원 날리는 셈이다. 실직 서민들에게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일련의 서민 법안 통과를 위해 정부 관련 부처들도 속이 타들어 갔다. 여야는 그러나 약속이나 한듯, 해당 법안들의 본회의 상정을 외면했다. 시급한 처리 법안이 아니라는 이유다. 사회분야를 취재하다보면, 수치상에서 나타난 것보다 지금의 민생은 훨씬 어렵다. ‘피폐’ ‘궁박(窮迫)’ ‘절망’ 등의 단어가 어지럽게 널려있다. 엊그제 노년의 독거 할머니 두분이 반 지하방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한분은 돌아가신지 보름여만에 집주인이 발견했다. 피폐한 서민 삶의 어두운 단면 같아 안타깝다. 지난해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10%대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청년 10명 가운데 6명은 아예 고용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청년실업이 우리사회의 가장 큰 뇌관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고용기회에서 밀린 청년들은 알바나 일용직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 역시 최저 생계 수준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젋은날을 고통스럽게 흘려보낸다. 우리 정치가 겉으로만 “백성이 우선이고 정치는 나중이다”는 수식어로 포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없는 것도 많지만, 그 중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없는 게 있다. 바로 ‘선민후정’(先民後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