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업무도 많은데 실종 전담까지 맡으라니…죽을 맛입니다”24일 오전 7시 대구의 한 경찰서 형사과. 올해로 4년째 형사로 근무한 A(35)경장이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A경장은 당직근무 중 쏟아지는 잠을 마다하고 두꺼운 형법 책과 한바탕 씨름 중이었다. A경장은 “지난 12일 치러진 진급시험에서 미끄러졌다”면서 “쏟아지는 형사업무에 올해는 실종 수사까지 업무를 분담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미리 내년 시험을 준비 중이다”며 연신 책장을 넘겨댔다. 실종사건 수사를 누가 전담할지를 놓고 대구경찰 내부가 시끄럽다. 최근 실종전담의 담당부서를 기존 여성청소년과(여청과)에서 형사과로 이관한다는 공문이 발단이 됐다.실종전담팀은 실종신고가 112로 접수되면 폐쇄회로(CC)TV 분석과 의료기록, 출입국내역 등을 조회해 실종자를 추적한다.경찰청은 2015년 실종수사 업무를 여청과로 전담시켰다. 장애인·노인·아동 등 사회적 약자가 주로 실종되다 보니 여청과가 맡는 게 적절하다는 판단에서였다.하지만 성범죄와 학교폭력을 다루는 여성청소년과의 업무 부담이 커져 실종수사에 집중하지 못해 적기를 놓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업무 효율성에 관한 내부 논의는 계속됐고 실종 사건은 강력 범죄와 연관된 경우가 많아 형사를 수사에 동원할 때도 잦았다.경찰청은 지난해 11월 실종 업무의 형사과 이전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경찰위원회는 최근 단순 가출을 제외한 실종사건을 형사과가 담당하도록 하는 업무 조정안을 의결했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대구는 다음달 1일 경찰인사가 모두 마무리되는 대로 실종 수사업무를 형사과로 넘길 예정이었으나 형사과가 실종팀 이전을 놓고 반발하고 있다. 안 그래도 업무가 과중한 상황인데 형사과에서 실종업무까지 떠안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여청과는 인력이 부족한 데다가 실종은 강력사건과도 연관돼 형사가 맡아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양 부서의 충돌이 잇따르자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18일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대구의 한 경찰서 형사는 “재검토한다는 자체가 부정적인 여론이 있다는 뜻 아니겠냐”며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등이 이슈가 되며 처음에 형사과에서 실종팀이 이전됐을 때보다 업무나 비중이 커진 상황이다. 인력이 확실히 충원되지 않는다면 부담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경찰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구의 여성청소년과 경찰은 “실종사건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지만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 인프라는 열악하다”며 “예산과 인력 확충, 진급시험 시 가산점 등 실질적인 대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형사과 경찰은 “과중한 업무와 낮은 보수, 불리한 승진으로 인해 경찰들이 형사가 되기를 피하면서 수사력 또한 저하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형사과에 가고 싶도록 환경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꼬집었다.전문가들은 인력 부족 등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계명대학교 윤우석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지도부 측에서는 실종팀을 형사과로 이관할 경우 사건과 관계된 강력범죄를 미리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실종사건의 90% 이상이 단순 가출, 연락 두절인 만큼 형사과의 업무가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현재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는 등 경찰 인력이 감소하는 상황이다”며 “실종뿐 아니라 많은 경찰 기능에서 인력증원이 필요하지만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