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재-언론인
흙먼지가 자욱이 하늘을 덮었다. AP통신의 로버트 가이거 기자는 1935년 4월 14일 일요일 오클라호마 보이즈시티를 뒤덮은 흙먼지 바람을 목격한 후 `검은 일요일`이라고 표현했다.
1930년대 미국인들의 삶은 정말 고단했다. 대공황으로 고전하는 상황에서 가뭄까지 겹쳤다.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콜로라도, 캔자스 등 중남부 지역은 `흙먼지 구덩이(Dust Bowl)`로 전락했다. 1920년대까지 땅 속 깊이 파내는 경작 방법이 확산된 결과였다. 풀 뿌리가 마구 파헤쳐졌다. 흙은 더욱 메말라졌다.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온통 하늘을 뒤덮었다.
농지는 사막이나 다름없었다. 흉년이 거듭되자 농민들은 하나 둘씩 정든 땅을 버렸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농민들이 줄을 이었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이를 소재로 삼았다. 미국인들은 이 시기를 `더러운 30년대(Dirty Thirties)`라고도 부른다.
다른 지역의 경우 기계화 농업에 힘입어 농산물이 넘쳐났다. 당연히 농산물 가격은 떨어졌다. 가격 하락은 영세농의 삶에 더 큰 충격을 줬다.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머리가 아팠다. 농민들의 삶을 방치하면 민심이 극도로 악화될 가능성이 컸다. 책사(策士) 그룹을 동원했다. 정책자문단(Brain Trust)에 해결방안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렉스포드 터그웰 콜럼비아대 교수가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그는 농경제학 박사였다. 터그웰은 농림부 차관보로 루즈벨트 행정부에 가세한 후 농림부 차관까지 지냈다. 농산물 생산 감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 재정착 지원청(Resettlement Administration)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농산물 생산 감축법`은 농가 소득 안정 대책이었다. 농산물 생산이나 가축 사육을 줄이면 보조금을 지급했다. 생산 및 출하량 조절을 통한 가격 안정 조치였다. 농가 보조금은 농산물 가공업체에 대한 세금을 통해 조달했다.
재정착 지원청은 만족할만한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가뭄 피해 지역에 거주하는 농민들의 이주를 돕기 위한 대책이었다. 하지만 소작농 이탈을 우려한 대지주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그 대신 캘리포니아에 이주 농민들을 위한 임시 주거시설을 조성했다. 재정착 지원청은 캘리포니아에 29개의 임시 주거시설을 세웠다. 상수도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춰 이주 농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터그웰은 대공황 극복 대책으로 신도시 건설을 주장했다. 매릴랜드의 그린벨트, 위스콘신의 그린데일, 오하이오의 그린힐즈가 이때 세워졌다. 새로운 도시 건설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경기 회복을 이끄는데 기여했다.
터그웰은 정책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그는 존 스튜어트 밀의 생각을 차용했다. 밀은 "전문가 그룹이 입법을 주도하되, 의회의 승인을 받게 하면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터그웰은 "정책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이어 제 4부로 `정책기획부`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책기획부`에서 정책을 입안하면 의회의 승인을 거쳐 행정부에서 집행하자는 게 골자다. 그는 "정책 기획 기능을 잘 살리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혈세(血稅)가 줄줄이 새고 있다. 정책의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정부가 진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혀를 차게 만들 정도다. 부산 국제크루즈터미널은 부두 앞에 배 높이보다도 낮은 다리를 세우는 바람에 부두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용인경전철은 1조원 이상을 투입했지만 하루 수입은 1,000만원에 불과하다. 가동할수록 적자는 누적될 수 밖에 없다.
대다수가 지방자치단체장이 치적(治績)을 남기기 위해 무리수를 동원한 결과다. `계산 없는 의욕`이 낳은 파국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타당성 조사를 거쳤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일부에서는 주민소환제 등을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후 약방문`일 뿐이다. 이미 지출된 혈세는 다시 거둬들일 수 없다. 사업에 대한 사전 심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터그웰의 주장처럼 `제 4부`를 도입하는 것은 어렵다. 지방의회의 사업 사전 심사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기구를 두는 게 필요하다. 이들에 대한 인건비 지출이 엉뚱한 사업으로 수천 억 원을 날리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