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스포츠레저부장 겸 부국장 = "sleeping very well(슬리핑 베리 웰, `아주 잘 잤어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위원장이 2014소치동계올림픽 개막을 10일 앞둔 지난달 28일 외신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대회 안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처럼 에둘러 답했다.
소치는 안전하니 걱정말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러시아가 이번 대회를 잘 치러낼 수 있고 러시아 정보 당국이 각국 선수단과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 다른 국가의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어 러시아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정말로 안전에 문제가 없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바흐 위원장은 “미안하지만 같은 말만 할 수밖에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오는 8일(한국시간· 현지시간 7일) 러시아 흑해 연안 휴양도시 소치에서 막을 올리는 소치올림픽이 테러리즘에 대한 안전 문제로 초비상 상태에 돌입해 있다. 안전 문제는 소수자 인권을 내세운 미국의 `러시아 동성애금지법` 보이콧 움직임과 함께 개막전 주요 2대 이슈로 떠올랐다. 동·하계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 같은 전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는 주요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는 항상 안전 문제가 성적 못지 않게 주목받아 왔다.
지난해 연말 러시아에서 발생한 잇딴 폭탄 테러는 개최국 러시아를 비롯해 각국 선수단에 불안감을 안기에 충분했다. 12월 29일 볼고그라드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 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한데 이어 하루 뒤 무궤도전차 폭발물 사고로 30여명이 희생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게다가 지난달 초순 러시아와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체첸 출신 여성들이 주축이 된 무장단체 `검은 과부(Black widow)` 요원 중 한 명이 방위망을 뚫고 소치에 잠입한 것으로 알려져 러시아 측과 각국 선수단은 바짝 긴장했다. 이어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올림픽위원회에는 테러 협박 이메일이 전달돼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알렉산데로 주코프 위원장이 직접 나서 안전에 대한 예비조치를 취했다며 "위협에 신경쓰지 말라"고 불안감을 잠재우려고 했다.
외부에 전해지는 것처럼 대회를 개최하는 러시아도 테러 문제에 대해서는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소치를 중심으로 한 가로 70km 세로 100km를 `강철 고리(Ring of steel)`라고 불리는 특별경계구역으로 설정, 5만명의 경찰과 연방보안요원을 배치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안전 대책에 드는 비용만도 20억 달러(약 2조1440억원)에 이를 정도다. 이번 소치올림픽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건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 정보기관 KGB 최고 책임자 출신답게 모든 국내외 정보를 이용해 용의자 색출 및 테러 방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 같은 러시아의 노력도 80여 참가국들에는 미더운 것 같지 않다. 미국은 비상시 흑해에 대기 중인 두 척의 전함을 동원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또한 자국 선수단과 방문객 안전을 위해 FBI(미연방수사국) 요원을 40명에서 더 늘려주도록 러시아에 요청하기도 했다. 옛 소련 연방국이었던 카자흐스탄은 1190실 규모의 대형 유람선을 흑해에 띄워 선수단 숙소로 사용하겠다는 기발한 발상까지 했다.
3연속 동계올림픽 10위권 진입을 노리는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사상 최대인 120명의 선수단과 문화공연단, 정부대표단 등 500여명이 올림픽 기간 현지를 찾게 됨에 따라 선수단 안전교육 강화와 함께 관련 부서간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등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
체제나 종교· 민족적 갈등 관계에 있는 인물이나 테러리스트에게는 올림픽만큼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를 알리거나 관철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없다. 행동에 옮기지 않더라도 테러 위협 메시지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오고 전 세계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다.
올림픽 테러의 대표적인 경우는 1972년 9월 발생한 뮌헨올림픽 사건이다.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던 팔레스타인의 무장조직 `검은 9월단` 소속 단원 8명이 이스라엘 선수단 선수촌을 급습, 이스라엘에 수감중인 팔레스타인 양심수 234명의 석방을 요구하다가 실패해 요원 5명과 함께 선수 9명, 경찰 1명이 사망한 올림픽 사상 최악의 참사를 말한다.
뮌헨 참사 이후로 IOC와 대회 개최국은 선수단과 관람객 안전을 대회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을 만큼 안전 문제를 중요시 해왔다.
뮌헨 참사 이후 올림픽대회 중 테러가 발생한 경우는 개최국과 IOC의 철저한 사전 예방 조치로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올림픽 테러는 1996년 애틀랜타대회 정도다. 반낙태· 반동성결혼주의자 1인 폭탄 테러로 인해 2명이 목숨을 잃고 100여명이 부상당했다. 미국은 9·11 뉴욕 대참사 이후 이듬해 열린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에서는 최고의 경계령을 발령하고 사고 없이 치러냈다.
2004년 8월 아네네올림픽을 앞두고도 3개월여전 아테네 인근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비상이 걸리기도 했지만 대회는 무사히 끝났다. 제작년에 열린 2012런던올림픽도 영국 정부가 경찰 1만2000명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바꿔 경비 인원을 두 배로 늘리고 경비 관련 비용도 2억8200만 파운드(약 5124억원)에서 5억5300만 파운드로 증액해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주요 국제 종합대회에서 선수단과 방문객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안전 문제는 사전에 철저히 예방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사후 처리는 그야말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격이다.
IOC와 조직위, 개최국은 안전 문제에 있어서는 대회 기간은 물론 개막을 앞뒤로 해 사전 보안 매뉴얼에 따라 철저히 준비를 하고 있다. 1980년 미국·영국 등 주요 서방국 불참으로 반쪽 대회로 열렸던 모스크바 하계올림픽 이후 34년 만에 올림픽을 치르는 러시아도 안전 문제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우리도 소치에 이어 4년 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을 치러야 한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그런지 몰라도 평창올림픽에 대비한 국제범죄와 테러 등 안전 문제에 대한 관련 기관의 구체적인 공조 체제는 아직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1988서울올림픽과 2002월드컵 등 주요 국제대회를 치러 이 분야에 대해 노하우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안전 대책 마련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과거에 주요 국제대회를 치를 때보다 우리는 국제 무대에서의 역할과 비중이 커졌고 더욱 주목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