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란 / 가천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세월호 먹구름이 대한민국 하늘을 뒤덮은 채 5000만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짓누르고 있다.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19일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유족들을 비롯한 국민들에게 사죄를 표명하면서 재발방지대책으로 퇴직 공직자에 대해서는 퇴직이후 취업제한 기간을 3년으로 정하는 등 공직자윤리법 개정 방침을 밝혔다. 공무원들과의 유착, 연결고리를 차단하기 위하여 취업 불가라는 강경책을 택한 것이다.하지만 공직에서 오랫동안 몸담아온 전문 인력과 지도적 위치에 있던 책임자들이 퇴직한 다음 취업을 하지 못한다면 이들의 전문적 식견이나 경륜의 사장(死藏)은 국가적 손실이다.이들이 공직에서 퇴직한 다음 전문분야의 책임자로 취업하여 공직에서 갈고 닦은 전문성과 경륜을 발휘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적, 사회적 측면에서 생산적이라 할 수 있다.그런데 문제는 전문성과 경륜은 뒷전이고, 관리 감독 공무원들과 유착의 연결고리가 됨으로써 세월호와 같은 국가적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점이다.따라서 유관분야 취업금지 같은 제도적 규제보다는 전문성있는 지도적 위치나 책임자 지위에 있는 지도층 인사들이 스스로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선비정신과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더 긴요(緊要)한 일이다.오래전부터 사법부에서는 전관예우 폐단을 방지하기 위하여 직전 근무지 개업금지 같은 제도적 장치를 유지해 왔다.얼마 전엔 고위직에 몸담았던 모 인사가 부인의 편의점 일을 돕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취업함으로써 끝까지 소신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초지일관(初志一貫)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분은 “무항산 무항심 無恒産 無恒心” 이라고 표현함으로써 한때 ‘무항산 무항심’은 국민들 간에 널리 회자되었다.약 2300년 전 전국(戰國)시대 무렵 중국 제(濟)나라 제선왕(濟宣王)이 맹자(孟子)에게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맹자는 “항산이 없어도(無恒産) 항심을 유지하는 것은(有恒心) 오직 뜻있는 선비만이 가능합니다. 일반 백성들은 항산이 없으면(無恒産) 그로 인하여 항상 바른 마음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無恒心).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부정하고 허황되어 어찌할 수가 없게 됩니다. 백성들이 죄를 범한 후에 법으로 처벌한다는 것은 곧 백성을 상대로 그물질(망민 罔民)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명군(明君)이 백성들을 그물질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맹자는 제선왕에게 백성들이 배부르게 먹고, 등 따뜻하게 지내면 왕도(王道)의 길은 자연히 실현된다고 설파한 것이다. 여기에서 항산(恒産)은 어떠한 일을 하거나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 재산을 의미한다. 항심(恒心)은 소신과 지조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선비의 정신을 의미한다.우수한 인재를 채용하여 장기간 공직을 맡게 하면서 보수를 지급하는 것 자체가 국가적으로는 국민의 혈세로 전문 인력을 양성한 것이나 다름없다.오랫동안 공직에서 전문성과 경륜을 쌓은 인적 자산을 취업금지 하는 등 지나친 규제는 유관분야의 비전문성, 비효율성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무조건 전문 인력의 취업을 막을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 인력의 취업을 허용하되 궁극적으로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의 ‘무항산 유항심’이라는 선비정신 함양이자 책임감, 직업윤리 의식의 발현이다.아무리 주위의 유혹이 몰려들어도 이를 과감히 뿌리치고(무항산) 항상 꿋꿋한 지조와 곧은 마음(유항심)을 지키는 선비정신 발현이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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