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정치인으로 살아온 이상효 전 경북도의회 의장이 야인(野人)으로 돌아간다.1979년 스물아홉 청춘에 첫 정치에 발을 내딛은 후‘의리와 뚝심’ 으로 민생정치를 했다.강산을 3번 훌쩍 넘긴 35년 세월이다.말 그대로 `허위단심`으로 달려온 오랜 시간이다.이상효 전 경북도의회 의장은 경주 출신의 4선 경북도의원이다.각 상임위 위원장을 거쳐 8대 부의장 9대 경북도의회에서는 전반기 의장에 올라 의사봉을 두드렸다.2010년 7월7일 경북도의회 제9대 전반기 의장 투표에서 전체 63표 가운데 61표를 얻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그런 그가 이번 6·4지선에서 5선 도전을 포기했다.정치 할만큼 했고, 더 오래하면 새내기 정치인들에게 `노욕`이라는 소릴듣는게 너무 싫었다.떠날때 미련없이 떠나는게 정치라고 했다.시인 `사무엘울먼`의 `청춘`이란 시 귀절에 청춘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른는 정열을 가르킨다.그는 젊은날의 청춘 초상을 `정치꾼`으로 살았다.이상효 경북도의원에게 있어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는 경북도의회다.이제 제9대 경북도의회를 끝으로 정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인으로 돌아간다.10일 열린 경북도의회 270회 임시회에서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마지막 임시회 마지막 5분 자유발언은 그의 몫이됐다.이상효 전 경북도의회 의장은 5분발언에서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시작한 제9대 의회의 개원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회기라고 말문을 열었다.그는 "제270회 회기를 끝으로 경북도의회에서의 의정활동을 모두 마무리하고, 그동안 도민과 지역민들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녔던 지난 16년의 의정활동을 뒤로 하고 이제 한사람의 자연인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아쉬움과 후회,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그는 잠시 말문을 닫고 청년 시절을 회고했다.젊은시절 국회보좌관부터 시작, 제9대 경북도의회 전반기 의장직 수행 등에 이르기까지 16년의 지방정치활동에서 그동안 뼈저리게 각인 돼왔던 중요한 깨달음이 있었고 후배 경북도의원들에게 경북도의회의 발전을 방향을 제시했다.지역발전과 지역민의 행복을 높여나가야 하는 중차대한 의무를 지니고 있는 지방정치인 경북도의원이라면 언제든지 자신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그렇게 하는 것이 지방의회, 지방정치를 살리고 나아가 300만 도민과 지역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는게 이유다.자신을 버릴 때만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닫고 사사로이 작은 이익에 집착 하지않고 과감히 자신을 버려야만 선배가 후배들을 배려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후배는 선배를 존경한다고 자신의 정치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놨다.고대 중국의 정치철학의 일화도 소개했다.이 경북도의원은 "고대 중국에서 내려오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잔이 있다. 7할 넘게 부으면 모두 다 밑으로 흘러내려버리는 묘한 잔이다. 계영배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다 가지려 하다간 자칫 다 잃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했다.결국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가르침을 경북도의원들은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고 따끔하게 충고했다.5분 발언을 끝으로 경북도의회 청사를 나서는 이상효 전 경북도의회 의장.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이상효 전 경북도의회 의장은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새삼 느끼듯 머리도 벗겨졌고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패였다.경북도의회 창문을 마지막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눈물 한방울이 흘렀다.청사를 나선 이상효 경북도의원은 배웅나온 동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따스한 미소를 보내며 그렇게 떠나갔다. 다음을 기약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