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에 사는 N(71)씨는 점식식사를 막 끝낸 뒤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경찰에서 연락이 왔는데, 할아버지 개인정보가 모두 털렸으니 가진 돈을 대구역 물품보관함에 옮겨 놔라”는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었다. 마침 집수리를 해준 인부에게 공사대금을 지급해 주기로 한 날이어서 은행 문 닫기 전에 돈을 모두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터였다. 그러나 그 전에 계좌에서 돈이 모두 빠져나간다면 큰일이었다. N씨는 두 은행에 760만원을 예금 중이었으므로 공사대금 400만원이 걱정됐다.N씨는 한달음에 은행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760만원은 아직 털리기 전이었다. 5만원권과 1만원권을 섞어 모두 찾았다. 검은 비닐봉투에 현금을 담아 품안에 꼭 안고 대구역까지 갔다. N씨가 은행을 들러 대구역으로 향하는 사이에도 범인과의 통화는 계속됐다. 범인은 “30분 안에 돈을 빼지 않으면 피해를 입는다”는 등 N씨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정신을 빼놓았다. 역에 도착해 돈을 넣으려고 했지만 방법을 몰랐다. 디지털 방식의 물품보관함은 더구나 절차가 복잡해 쩔쩔 맬 지경이었다. 그 때 대구역 이용객들의 안내를 돕던 철도공무원 이광희(52)씨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N씨를 발견한 것이 행운이었다. “현금 뭉치를 보관함에 넣으려 한다는 것이 이상했다”던 이 씨는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했다. 그 자리에서 112에 신고했고 중부경찰서 관할 삼덕지구대에서 즉각 출동, N씨의 천금같은 돈을 지켰다. 은행계좌의 비밀이 다 알려졌으니 즉각 인출해서 철도역의 물품보관함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 최근 유행하는 보이스피싱이다. 가끔 뉴스에 나오지만 주의해서 듣지 않으면 깜깜하게 된다. 자신에게 그런 전화가 걸려 오면 더욱 오금이 저려 옴짝달싹도 못하게 된다. 범인들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철도공무원 이광희 씨처럼 눈썰미 있는 사람이 없다면 고스란히 당하게 된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금융사기 피해액은 무려 2165억원에 달한다. 보이스피싱 피해액에 대한 공식 집계가 시작된 2012년과 비교하면 2배나 증가한 것으로 범정부차원의 대책이 시급해진 상태다. 정부가 300만원 이상 ATM서 인출하려면 입금 후 30분 지나야 되도록 조치했다지만 보이스피싱은 여전히 설치고 있다. 더 강력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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