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보다 연세가 조금 많은 도반 한 분이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어렸을 때 여읜 여동생이 가끔 딸 아이 피아노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게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합니다. 어린 여동생이라는 말에 잠시 제가 안심을 하고 만만하게 본 것 같습니다. 그냥 ‘어린 귀신인데 뭐 준비 게 있겠어’라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는 바로 불러 봤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린 소녀가 아닌, 완전히 성장한 처녀 귀신으로 대단한 원귀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 큰 처녀 귀신이 돼 있었습니다. 영혼도 몇십 년 지나면 대력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제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는 것은 상대가 대단히 두려움이 많아 제게 전이 됐다는 증거입니다. 도반 분과 저는 좁은 방에 서로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원귀에 황급하게 얼른 결계를 치고 가운데 침대 위에 잠시 앉혔습니다. 그랬더니 처음 오는 곳이고 자신도 당황했는지 힘을 세게 부리며 바로 튀어 올랐습니다. 여동생 귀신은 안절부절못하고 방 천장을 빙빙 날아다녔습니다. 너무 빨리 돌아서 마치 8명이나 되는 귀신이 각기 팔방에 서 있는 듯했습니다. 같이 있던 도반도 그때야 한기를 느껴서 쭈뼛해합니다. 원귀는 어린 나이에 죽기가 정말 싫었나 봅니다. 어쩔 수 없이 밝은 빛의 포승줄을 만들어 묶어서 다시 침대 위에 앉혔습니다.가만히 보니 오랫동안 어떻게 오빠 옆에 있었나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대충 들어보니, 자기를 아껴주던 그래서 잊지 못하고 가끔 생각해주는 오빠가 있었기에 가능했나 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다 보니, 오빠가 결혼하고 자기 같은 여자 조카도 태어났습니다. 어느덧 자기 또래가 돼가는 걸 보면서 자기도 그렇게 커가는 걸 깨달았나 봅니다. 그래서 이젠 조카보다 훨씬 큰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나 봅니다. 화장한 듯한 모습도 얼핏 보입니다. 그렇게 오빠와 조카 옆에 있는 것이 좋았나 봅니다. 귀신 입장에서야 좋았겠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행하지 않았는데도 성장하고 마치 화장까지 한 듯한 모습을 보일 정도로 힘을 얻은 처녀 귀신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조카를 비롯한 오빠 등 여러 가족과 사람들의 기를 적지 않게 흡수한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가족 중 누군가를 숙주로 삼은 것 같았습니다. 비슷한 나이의 조카도 있으니 그런다는 생각도 없이 어쩔 수 없이 붙어살았을 것입니다. 이승에서 계속 살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몸이 없으니 소화도 안 되고 밥을 먹을 수도 없으니 그렇게 에너지를 보충한 것입니다. 이승에서 살려면 아니 견디려면 어느 정도 힘이 필요할 테니까요. 빨려고 해서 빨대를 꽂고 사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다 보면 저절로 가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신과 인간은 따로 사는 게 좋습니다. 이런 얘기들을 다 설명하고 “어찌할까요?”라고 묻자, 오빠가 되는 도반은 그냥 옆에서 잘 도와줬으면 한다고만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게 어디 가능한가요. 결국, 사람이 힘들 때는 저절로 빙의돼 더 강력한 숙주로 삼을 뿐이기에 살아 있는 사람한테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특히 귀신으로 남는 것은 맑고 밝은 혼이 아니라 시샘과 질투, 온갖 부정적인 생각만을 하는 백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좋아하는 오빠, 그 조카의 기운이나 빨아야 한다면 그게 지옥이 아니고 뭐겠는지요? 그래서 얘기를 나눈 끝에 오빠도 결국 승낙하고 천도시키기로 했습니다. 오빠는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서운하다면서 어떻게 좋은데 보낼 방법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바로 반대했습니다. 인과응보야말로 연기법인데 커다란 선업을 지은 것도 아닌데 우리 마음대로 좋은데 보내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늘의 법칙을 벗어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하며 그냥 생시나 전생에 지은 업대로 가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 죽었으니 그리 업장도 두텁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순리에 따르자고 했습니다.동의를 얻은 후 주문을 외면서 망자를 인연에 따라 인과응보의 업 따라 저승으로 보내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돌연 방안이 맑아지고 밝아져서 처음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도반도 그걸 느끼고 환희다워 하더군요. 고맙다는 말을 듣고 또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뭔가 모르게 찜찜했습니다. 몇 분 더 지나고 나서도 계속 느낌이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천도시킨 영가가 어디에 가 있나 살펴보았습니다. 아까 분명 동네 저승사자가 와서 데려가는 걸 보았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잘 찾아보니 남해 어딘가에 익사한 것처럼 가라앉으며 잠겨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오빠에게 사후에 어디 묻혔나 했더니 제주도 산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해를 넘은 거구나. 근데 왜 바다를 못 건넜는지 매우 의아했습니다. 백으로 오래 있어서 무거워 하늘로는 높이 못 날아가도 바다 정도는 순식간에 넘칠 수 있는데 이상했습니다. 다시 잘 살펴보니 영가 주변에 바다의 이 존재들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날아가다가 그들에게 붙잡히거나 잡아먹힌 듯했습니다. 그래도 천도시킨 인연도 있고 도반의 부탁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물에 들어가 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물 색깔이 들어가 보니 그냥 바다색이 아니라 진한 녹색으로 걸쭉했습니다. 마치 식물의 나뭇잎을 갈아 놓은 것 같이 이런 식으로 영가들을 녹이는가?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수렁에 빠지듯이 들어가서 일단 건져냈습니다. 얼른 데리고 나와 제주도 뭍에 데려다 놓고 또 잘 찾아가도록 조치해서 보냈습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돼 바라보니, 나무들이 많은 숲으로 가더군요. 그 숲 부근에는 영가들이 참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수많은 영가가 안식을 취하며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누워 있는데 여동생 영가는 나무 밑에 안 들어가고 바로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나무는 생명수와 같이 높았습니다. 그 생명수는 재크와 콩나무처럼 하늘로 쭉쭉 올라가는 듯합니다. 물에서 구해줘서 그랬는지 원한이나 원망은 사라지고 더는 이승에 미련이 없어진 듯 천 리에 순응하며 한없이 쭉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듯이 올라갔습니다. 그다음은 안 따라갔습니다. 가만히 보니, 바다나 강에 잠기면 나중에 환생해도 태아나 영아 때 중절 등을 당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바른 생각인지 점검해보고 또 여기저기 찾아보니 그럴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모면하게 해줬으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라며 오빠 분께 말했습니다. 저는 무연이지만, 도반의 여동생이니 무연이 아닌 유연중생 한 분 또 천도시킨 게 됐습니다.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 흐뭇했습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려서 그런지 요즘 괜히 좋아합니다. 경계를 더 해야겠습니다.그러고 보니 저보다 나이 많은 도반의 여동생이니 제게는 친구뻘이겠네요. 주변의 이상한 친구들은 처녀 귀신이니 만나서 좋았겠냐고 실없는 농담이나 하겠지만, 전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항상 대비하지 않으면 이런 일을 당하기도 하나 봅니다. 천도는 끝까지 제대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돈을 안 받고 하는 일이라도 사람의 인연과 생명과 관련된 일이기에 성심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여동생 영가와는 일기일회였습니다. 일생에 딱 한 번 만났는데 한 사람은 살아있고 한 사람은 죽어 있었네요. 참 기묘한 만남이었습니다. 조금 전 다시 찾아보니 이 세상에는 없었습니다. 잘 올라갔나 봅니다. 다행입니다.주변에 오래전 돌아가신 영가가 있습니까? 혹시라도 헛것이라도 봤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영가든가 아니면 여러분의 사념이 만든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도할 줄 모른다면 함부로 나설 일은 아닌듯합니다. 조심하세요. 천도 안 되면 당신 옆에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돈까지 받았다면 그 원망을 모두 대신 받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은 ‘믿거나 말거나’식 소설 픽션으로 ‘혹세무민’으로 피해를 보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며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