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길 / 숭실대 명예교수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갈등해소와 극복이다. 갈등극복이 곧 발전이기 때문이다. 선거 때나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갈등은 분출된다. 우리 사회에는 자신들의 주장만이 옳다며 목청을 높이면서 막말과 저주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정치권에서 오고간 말들을 한 번 되씹어보라. 말 뒤집기와 욕설과, 저주와 거짓말의 진원지가 어디인가. 철도파업에 대한 평가를 보자. 2003년 철도파업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파업 현장 공권력 투입에 관여했던 현 민주당 국회의원은 그때의 파업은 불법이어서 경찰력 조기 투입이 불가피했다면서 지난 연말의 파업은 합법파업인데 왜 공권력을 투입하느냐고 비판했다. 무슨 잣대로 불법파업과 합법파업을 가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재판결과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했다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정치 판사’의 “살아있는 권력의 입맛에 맞춘 재판”이라고 했다. 한명숙·박지원 등이 무죄를 받았을 때에는 재판부를 칭송했던 그들이다. 판결이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난하거나 정치 쟁점화한다면 삼권분립은 왜 있는 것인가. 김 전 청장과 각을 세웠던 현직 경찰 간부는 "재판부가 판단을 잘못했다"면서 정치인처럼 기자회견을 했다. 현직 경찰간부가 어떻게 이런 회견을 할 수 있는가.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장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일부 종교인과 법조인, 시민단체도 갈등조장에 동참한다. 세상을 보는 눈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옳고 그름을 가리기는커녕 진영논리에 매몰돼 있는 건 문제다.
정치인들은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의 말이 다르다. 말을 바꿀 때 그 까닭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국민의 기억력은 결코 짧지 않은데 슬쩍 넘어가려는 꼼수를 부린다. 거짓말을 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정치인들은 평생 야당을 하거나 여당만 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대선이 끝나도 끝이 아니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 대한 불복성 언행을 하자 새누리당은 발끈했다. 하지만 2002년 대선에서 패한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은 대선불복의 원죄가 있다.
대통령은 성역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걸 누가 뭐라 하는가. 대통령과 정부를 지지하든 안 하든 그건 자유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을 귀태(鬼胎)라고 하거나 암살을 연상케 하는 말을 하는 건 치졸한 작태다.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을 겨냥, `비행기 사고로 즉사`를 바라는 저주는 정상인이 할 말이 아니다. 현직 판사가 `가카새끼 짬뽕`이라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했고 어느 국회의원은 명박급사라는 말도 했다.
언론매체도 오염된 언어를 쏟아내고 저질사회를 만드는 데 한 몫을 한다. 인터넷에는 품위를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한다. 영향을 받은 어린 학생들까지 거친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정 목적을 가진 세력은 광우병 괴담을 비롯한 온갖 괴담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그런 괴담으로 이미 목적을 달성했거나 또 다른 괴담을 퍼뜨릴 준비를 한다.
국민소득은 잘 살고 못 사는 나라를 가르는 기준으로 흔히 시용된다. 개인의 품위나 교양수준은 그 사람의 소득수준과 일치하지 않듯이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과 국민의 품위는 국민소득수준에 비례해서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소득에 걸맞게 국민의 품위도 올라가야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고 얼굴이다. 우선 막말하는 정치인부터 몰아내자.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그 위기가 자신들의 일그러진 언행에 크게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