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숙 Bill 플러스 회장 유교사상이 뿌리깊은 우리나라는 조상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많다. 하지만 종교적인 교리와 믿음에 따라서는 조상의 기일에 제상(祭床)을 차리지 않는 가정도 있다. 이 경우 음식을 차려놓고 가족과 친척이 모여 추도식이란 이름으로 고인을 추모할 뿐 큰절을 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자가 그러하다. 하지만 천주교는 제사를 막지 않는다. 제사를 허례허식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귀신이 어디 있으며, 돌아가신 부모나 조부모가 어떻게 와서 음식을 먹고 가느냐는 것이다. 또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노동과 비용 때문에 제사를 기피하는 가정도 있다. 5대조, 6대조까지 제사를 모셔야 했던 옛날에는 제사로 인한 비용 지출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게다. 요즘은 이름 있는 종가를 제외하곤 6대조까지 제사를 모시는 가정이 많지 않을 것이다. 제사가 여러 가지 음식을 마련해야 하는데 따른 노동력과 경비 등으로 인해 많이 변질돼 가고 있다. 제사는 장손이 지낸다는 관습에 대한 장남의 불만도 많다. 그래서 요즘은 형제가 여럿인 가정에서는 돌아가면서 지내기도 한다. 또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부모님, 증조부모님의 제사를 한데 묶어서 하루에 지내는 가정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가 하면 1년 중 하루 묘소에 가서 한꺼번에 성묘를 하는 집안도 있다고 한다. 간소화인지, 편의주의인지 알 수 없다.하지만 제사 음식에 담긴 의미를 안다면 소홀히 할 수 없는 가정 행사가 제사임을 알게 될 것이다. 허례허식도 아니요, 음식을 장만하느라 힘이 든다고 불평을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성껏 제사를 모셔야 자손이 잘 되고 가정이 발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제상의 여러 음식, 특히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밤·배· 곶감) 중에서 조상을 위한 음식은 곶감 하나뿐이라고 한다. 감나무를 잘라보면 감이 한 개라도 열린 나무는 속이 까맣고, 감이 열리지 않는 나무는 속이 하얗다고 한다. 자식을 둔 부모와 같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하루도 걱정을 하지 않는 날이 없다. 어렸을 때는 물에 빠지지 않을까 불에 데지 않을까 걱정하고, 조금 자라 청소년이 되면 사춘기를 탈선하지 않고 잘 넘길까 걱정한다. 결혼 적령기가 되면 참한 규수를 만나 잘 살까, 결혼 후 자식은 쑥쑥 잘 낳을까, 이렇게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다보니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는 것이다. 제사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는 음식은 곶감이 유일하고, 그래서 제수를 장만할 때 곶감을 맨 먼저 사야 한다고 한다.그렇다면 다른 제사 음식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제상에 올리는 조율이시 중 곶감을 제외한 배, 대추, 밤은 자식을 위한 음식이라고 한다. 배는 자기 자식이 배처럼 시원시원하고, 서글서글하고, 달콤하게 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놓는다고 한다. 자기 자식이 밖에 나가 기죽어 있고, 내성적인 성격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대추는 약용으로도 많이 쓰이지만 결혼식 폐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일이다. 폐백에서 부모나 친척들이 신랑신부의 절을 받은 다음 대추를 던져 주는 것은 자식을 많이 퍼뜨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추는 과일 중 꽃이 가장 늦게 피지만 열매는 가장 먼저 열린다. 따라서 늦게 결혼을 하더라도 빨리 자식을 낳고, 대추나무에 대추가 주렁주렁 달리듯 많은 자손을 낳으라는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밤은 익기 전 풋밤 때는 가시뿐이어서 속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익으면 손을 대지 않아도 저절로 툭 터져 알맹이를 떨군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성장하여 성인이 되면 스스로 독립을 해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우뚝 서게 된다. `자식은 품안의 자식`이란 말이 있다. 어렸을 때는 애지중지 키우지만 성인이 되면 부모 품에서 나가 독립하게 된다. 18세 전까지는 부모가 보호를 하지만 그 이후는 혼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경제교육을 시켜야 한다.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은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선택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인양 간섭하기보다는 그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밤이 익으면 저절로 껍질을 깨고 나오듯이 자식도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의사를 존중해주는 부모가 참된 부모라고 생각한다.제사 상에 올리는 조기도 자식을 위한 음식이다. 조기는 바다에서 나는 고기 중 으뜸으로 치는 생선이다. 자기 자식이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인물로 성장하기를 조상에게 염원하는 의미에서 제상에 조기를 올린다고 한다. 제사는 허례허식이 아니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자는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는 의식이다.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데 따른 피곤함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불평불만을 하지말고 정성을 다해 조상을 모시면 그 가정엔 복이 내리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진다. 음덕(蔭德)은 저절로 굴러들어 오지 않는다. 자식이 잊어버린 조상이 어떻게 음덕을 내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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