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 붉은 해가 장엄한 빛을 내며 치솟아 올랐다. 60년 만에 돌아오는 ‘붉은 말의 해’이다. 2월17일 설날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병오년의 막이 오른다.육십간지(六十甲子) 중 하늘의 기운을 뜻하는 십간(十干)의 ‘병(丙)’이 오행(五行) 중 ‘불(火)’을 상징하며 붉은색을 나타내고, 땅의 기운인 십이지(十二支)의 ‘오(午)’는 말(馬)을 의미한다. 말띠는 십이지(十二支) ‘오(午)’가 12간지 순서에서 7번째 지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십이지는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눠 각 시간대에 동물(지지)을 대응시킨 체계에서 출발해, 시간·달·해를 구분하기 위한 기억법으로 발전했다. 지지 순서는 자→축→인→묘→진→사→오(말)→미→신→유→술→해로, 12년마다 한 번씩 반복된다. 말은 예로부터 활동·진취적인 기운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2026년은 불의 기운과 말의 활력이 합쳐져 어느 해보다 활력이 넘치는,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 혁신을 시도하는 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경북 馬 지명 전설 102개 눈길병오년 말의 해를 맞아 말과 관련한 지명이나 전설이 눈길을 끈다.말은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주요 교통수단이자 전투수단이었다.안악고분 벽화에도 말이 끄는 수레 그림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이용됐고 사육됐다.말총은 탕건을 만드는 데 이용됐고 가죽과 고기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이처럼 친근한 동물이다 보니 전국 곳곳에서는 말과 관련한 지명이나 설화가 풍성하게 전해진다.말 관련 지명은 `마산`(49곳), `천마산`(24곳), `역말`(19곳), `갈마`(14곳), `마동`(12곳), `철마산`(12곳), `마치`(9곳) 등이 있다.말의 모습을 표현한 지명도 많은데 봉우리가 말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마이산`이나 고개의 모습이 말 안장을 얹는 말 등과 닮은 `마령재` 등이 대표적이다.국토지리정보원은 2010년 호랑이의 해(경인년·庚寅年)를 시작으로 2021년 소의 해(신축년·辛丑年)에 이르기까지 12년에 걸쳐 전국에 고시된 지명 약 10만 개를 대상으로 십이지 동물과 관련한 지명 조사를 진행했다. 이 가운데 십이지 동물과 관련한 지명은 4109개로, 전체의 약 4.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말과 관련한 지명은 744곳이다.용(1261곳)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이어 소(731곳)·닭(561곳)·호랑이(289곳)·뱀(208곳) 순이었다. 원숭이는 8곳으로 가장 적었다.우리나라에서 접하기 어려운 동물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쥐(64곳)·개(101곳)·돼지(112곳)도 지명에 나타나는 사례가 많지 않았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전국 시도별로 보면, 전남이 142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 102개, 충남100개, 경남 86개, 경기80개, 전북78개 등의 순이다.▣신화 속의 매개자, 말(馬)우리 역사 속에서 말은 단순한 가축 그 이상의 의미였다. 신라 건국 신화에서 말은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매개자로 묘사된다.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알을 세상에 전한 존재도 하늘에서 내려온 백마였다.말의 신비로운 형상은 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 당시 발견된 국보 제207호 `천마도`를 통해 구체화됐다. 천마도는 말 안장 옆에 늘어뜨린 `말다래(장니)`에 그려진 그림으로, 고대인들이 투영한 말의 역동적인 기상을 보여주는 정수다.근대 이전 전쟁터에서 기마병은 오늘날의 탱크나 장갑차에 비견되는 핵심 전력이었다. 경산 압량읍의 연못 `마위지`는 이러한 역사의 장소다. 삼국시대 신라의 압량주 군주로 부임한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이 군마들에게 물을 먹이던 곳으로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마위지 인근 영남대학교의 상징 동물 또한 `천마`다.경마공원 개장을 앞둔 영천 역시 말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고장이다. 조선시대 한성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던 조선통신사 일행이 영남 지역에서 합류하던 거점이 바로 영천이었다. 이곳은 통신사를 환송하는 전별연과 함께, 말 위에서 화려한 기예를 선보이는 마상재가 성대하게 열리던 곳이었다.현대에 들어서도 말과 관련된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사용 중이다. 유명 자동차 기업이나 명품 브랜드의 상징으로 활용되며 고급스러움을 드러내는 마케팅의 최전선에 자리해 있다.▣대구경북 말의 발자취대구경북의 지명에서도 말의 흔적은 역력하다. 대표적으로 포항 남구 구룡포 일대에는 조선시대 국영 목장의 흔적인 `말봉재`가 남아있다. 달성군 화원읍 `마비정(馬飛亭) 마을`에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말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밖에도 지형이 말의 형상을 닮았다는 경주 `거마골`, 군위 `마시리`, 안동 `말봉` 등 말과 관련된 지명들이 경북도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 말이 얼마나 깊이 투영돼 있었는지를 실감케 한다.대구시 지명유래와 국토지리정보원·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살펴보니 말과 관련된 지역 지명은 대구에 4개소, 경북에 32개소가 있다.대구 대표 동네는 달성군 화원읍 마비정마을이다. 먼 옛날 마고담이라는 장수가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비무라는 수말이야기를 듣고, 백희라는 백색 암말을 비무로 착각해 화살과 경쟁시킨 후 화살을 따라잡지 못하자 베어 버렸다. 비무가 돌아와서 백희의 주검을 보고 슬피울었고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비무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마고담은 잘못을 빌고 이곳에 정자를 짓고 살다가 죽었다는데 그 정자가 마비정(馬飛亭)이라 하며 동네유래 가 됐다.화원읍에 자연부락 마시동(馬嘶洞)이 있다. 이곳은 말을 조달하던 곳으로 말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지켜서 마수동(馬守洞), 또는 말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 마시동(馬嘶洞)이라 부르게 됐다.그 외에 북구 읍내동에 말산과 말산공원이 있다.영천시 신령에는 조선시대부터 찰방이 주재하던 장수역(長壽驛)이라는 역참이 있었다. 찰방은 종6품 관원으로, 해당 역참과 속역의 운영·역리(驛吏) 관리·역마 보급 등 역정(驛政) 전반을 총괄했다. 이 역은 경북도 남부 내륙에서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와 경북도 남부를 잇는 교통로를 관할했다.속역은 본래 15개였다가 조선 후기 13개로 줄었다고 한다.이곳이 일본으로 향하던 조선통신사의 이동 구간으로 그들이 들렀을 때 잔치를 베풀며 마상재를 열기도 했던 곳이라 영천은 말의 고장이 됐다.현재 신령중학교 인근에는 장수역이 있었던 흔적으로 관가(官家)샘터라는 우물이 아직 존재하고 있고 그 일대 도로명칭은 찰방길이다.신령군읍지에 의하면 장수역에는 큰 말이 2필이며 중말 2필·복마(卜馬) 10필이 있고 역리는 20명이며 노(奴) 170명·비(婢) 86명이 있었다고 했으니 그 역원(驛院) 규모를 알 수가 있다. 영천시 중앙시장 인근에는 말에게 먹이를 주었던 말죽거리가 있으며, 말이 모여 살던 말 골·말 무덤도 있다.경북지방에는 말의 형상을 빗댄 지명이 25개소가 있다.그중에서 가장 많은 명칭을 차지하는 이름이 천마산으로 영주시·포항시 흥해읍 등에 6개소가 있다. 나머지는 영천시처럼 말과 관련된 역사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으로 7개소가 있다.▣60년 주기 병오년, 격동의 시기와 맞물려60년 주기로 돌아오는 병오년은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격동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1846년 병오년은 천주교에 대한 대규모 종교탄압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다수의 천주교 신자가 순교했다. 이는 쇄국정책을 고집하던 조선과 영, 미, 프랑스 등 외부 세력과의 충돌과 갈등이 종교탄압으로 고조되는 시기였다.1906년 병오년은 일제의 통감부 설치로 조선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고, 전국적으로 항일 의병 활동이 활발해지는 기폭제가 됐다.1966년 병오년은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전투 병력을 본격적으로 파병한 해다. 해외 첫 대규모 파병으로, 우리 경제 발전과 안보 등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병오년은 한국 역사에서 주권 상실의 위기, 종교적 탄압, 국제 분쟁 참여 등 순탄치만은 않은 사건들을 겪어야 했다.새해, 붉은 말의 해는 어떤 해로 기억될 것인가?지난 8일 교수신문이 2025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에 대해 전국 대학교수 766명을 대상으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33.94%(260명)가 ‘변동불거’를 택했다.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여야의 격한 정치적 갈등 구조 등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시대적 메시지를 상징한다는 설명이다.▣‘말띠 여성은 팔자가 드세다’? 십이지신 중 말만큼 억울한 누명을 쓴 존재도 없다. 한때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말띠 여성은 팔자가 세다`는 근거 없는 속설 때문이다. 이 편견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혼사를 앞둔 말띠 여성들을 곤란하게 만든 사회적 악습이었다.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낡은 미신을 이야기한다. 1990년엔 ‘백말띠의 비극’으로 불릴 정도로 ‘여아선별 낙태’가 극심했다. 2014년 청말띠 해에도 출산을 앞둔 예비 부모들이 ‘제왕절개로라도 말띠를 피하겠다’며 걱정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말띠 여자 기피 현상’, 우리 전통일까? 아니다. 천진기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의 연구에 따르면, 한중 고문헌엔 말띠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이 등장하지 않는다.조선 왕실의 역사만 되짚어 봐도 말띠 왕비가 여럿이다. 정현왕후(1462년생), 인열왕후(1594년생), 인선왕후(1618년생), 명성왕후(1642년생), 대한제국 순정효황후(1894년생) 등이다.천 전 관장은 2014년 10월 발표한 국가유산 전문지 국유정담에 실은 글 ‘고전 속 동물 이야기 – 백마 탄 초인을 찾아서’에서 “말띠 해에는 별나게 띠 타령이 심하나, 중국이나 우리나라 문헌이나 수집된 자료에는 이런 속신을 찾아볼 수 없다. 조선 왕실에서 사주팔자를 따질 줄 몰라 말띠를 왕비로 간택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지적했다.▣일본 미신이 부른 말띠 여자 편견이같은 편견에 대해 역사 연구자들은 일본을 지목한다. 일본엔 60년에 한 번 돌아오는 병오년생(丙午, 히노에우마) 여성은 기가 세 남편을 잡아먹는다는 미신이 있다. 60간지 중 ‘병오’는 오행으로 불과 불이 합해지는 해인데, 이를 불길하게 해석한 것이다.병오년이던 1666년 한 여성이 사랑에 눈이 멀어 도쿄 시내에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의 영향력도 크다. ‘야오야 오시치(八百屋お七)’로 불리는 이야기로, 우키요에나 가부키, 소설, 애니메이션 등으로 각색돼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야채가게 딸 오시치가 화재 피난처에서 만난 승려 요시사부로에게 반해 그를 다시 만나려 불을 질렀고, 결국 16세에 사형당했다는 줄거리다.1966년엔 일본판 ‘적말띠의 비극’이 벌어졌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이 1965년 2.14명에서 1966년 1.58명으로 무려 25%나 추락한 것이다. 미신의 영향으로 출생아 수가 크게 줄어든 사례로 꼽힌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1966년의 출산율 급락 사태를 ‘히노에우마’ 사태라 부르며, 이후 출산율 부양 정책의 최저 방어선으로 삼기도 했다. 이외에도 병오년에 태어난 여성들이 결혼과 관련해 불이익을 겪거나, 미신 탓에 혼담이 깨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도 여럿 있다.▣말, 신성한 영물이자 행운의 상징천 전 관장은 오히려 말이 우리 민속에서 얼마나 긍정적인 상징이었는지를 강조한다. 우리 조상들은 말이 액운을 막고 행운을 부르는 상징이라고 봤다. 날개 달린 말 그림이 그려진 부적은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부적(퇴액진복부, 退厄進福符)’, ‘신성한 말 부적(신마부, 神馬符)’이라 불렸다.말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영매체로, 영혼이 타고 저세상으로 가는 동물이었다. 신라와 가야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옛날 이야기에서도 말은 신성한 동물이자 하늘의 사자(使者), 중요한 인물이 태어날 때 나타나는 존재로 등장한다. 동부여의 금와왕 신화를 보면, 말이 큰 돌을 발굽으로 차서 울자 그 돌 밑에서 아기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혁거세 신화에서는 백마가 한 나라의 국조 탄생을 알려주는 하늘의 사신 역할을 한다.말을 잘 다루는 능력은 왕이나 장수의 자질과 직결됐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좋은 말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고 한다. 금와왕이 말을 기르게 했을 때, 주몽은 일부러 좋은 말은 적게 먹여 여위게 하고 못난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했다. 금와왕은 살찐 말을 자기가 타고 여윈 말을 주몽에게 주었는데, 결국 주몽이 그 여윈 명마를 타고 탈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명품 브랜드는 말을 사랑해근거 없는 미신에 발목 잡힐 게 아니라, 힘차게 질주하는 말의 기상을 받아들일 때다. 천 전 관장은 “힘찬 질주 본능의 말은 현대에 요구되는 덕목”이라며 “이제는 오히려 환영받는 띠가 말띠”라고 강조한다.오늘날 말은 부와 행운의 상징이다. 명품 브랜드들은 말을 사랑한다. 세계적인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의 로고엔 앞발을 치켜든 ‘도약하는 말’이 있다. 독일 포르쉐의 엠블럼에도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의 상징인 말이 있다. ‘회장님 차’로 불리는 현대차 ‘에쿠스’도 라틴어로 신화 속 승리한 장군의 말, 멋진 마차를 끄는 말, 하늘을 나는 말을 뜻한다.1837년 마구점에서 시작한 에르메스는 두 마리 말이 끄는 사륜마차를 로고로 사용한다. 실크 스카프에도 말과 마구를 주제로 한 디자인이 등장한다. 구찌는 승마용품에서 출발한 브랜드답게 말 재갈 장식이 대표 상징이다. 폴로 랄프 로렌은 귀족 스포츠인 폴로 경기를 하는 기마 선수를 로고에 새겼다. 영국 버버리의 로고에는 ‘전진’이라는 뜻의 깃발을 든 기마 기사가, 프랑스 롱샴에는 달리는 경주마가 그려져 있다. 뉴욕의 코치는 전통적인 마차와 말 로고로,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는 말을 탄 고디바 부인의 전설을 로고로 사용한다.김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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