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대한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 우리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순간이면 방송에서 요란하게 흘러나오던 노래가 있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앞두고 대중에 알려진 <이기자 대한건아>다. 모윤숙의 동생인 시인 모기윤이 작사, 육군 군악대장 출신 김희조가 작곡한 이 노래는 당대 최고의 바리톤 김부열의 웅장한 목소리를 통해 국민의 심장을 뛰게 했다.
그 시절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대회가 아니었다. 국민은 올림픽 메달을 국가 위상과 동일시했다. 국가대표는 국가를 위해 전장에 나가 싸워야 하는 `전사`와 같았다. 국민의 요구는 오로지 금메달이었다. 금메달은 따면 국민 영웅이 되며 돈과 명예가 뒤따랐지만, 기대주가 메달 하나 따지 못하면 `잘 싸웠다`는 격려 대신 `헝그리 정신이 없네` 하는 차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1998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집단보다 개인이 우선시되는 풍조가 확산하면서 금메달 지상주의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승리의 찬가였던 <이기자 대한건아>가 방송에서 자취를 감춘 것도 이 무렵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 여자 핸드볼팀은 덴마크와의 결승에서 석패했지만, 국민은 금메달보다 더 값지다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과 노장들의 투혼이 조명되면서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제작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스포츠 그 자체를 즐기는 새로운 세대가 전면에 등장했다.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으며 경기장에 입장하는 수영의 박태환을 보며 국민들은 `정신상태가 해이하다`는 삐딱한 시선 대신 `선진국 청년답다`는 찬사를 보냈다.
2026년 밀라노 동계올림픽을 맞아 전파를 타는 한 광고가 눈길을 끈다. "4년 전 올림픽에서 한국이 몇 위를 했는지 기억나는 사람 (있어)? 그런데 `영미`를 외치던 팀킴(컬링)의 이야기는 또렷하게 기억나네"라는 카피가 그것이다.
메달 순위보다 대표선수들의 인생 스토리에 더 관심을 보이는 요즘 팬들의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국민 모두가 전사가 된 심정으로 "이기자! 빛내자!"를 합창하던 시절엔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 선수는 이제 더는 국가의 명예와 국민의 자존심을 짊어진 `전투병`이 아니다. 대중 역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그 과정을 즐기는 선수들의 모습에 더 관심을 보인다. 참으로 반가운 변화다.
이번 대회도 어김없이 `금메달 X개, 종합 순위 X위`라는 중간집계 결과가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다. 메달 숫자로 국력을 과시하려는 시대는 이미 지났는데 권위주의 시대를 산 기성세대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어른들이 금메달 순위라는 공허한 관성에 머물러 있지만, 청년들은 경기 결과 너머의 과정을 바라보고 있다. 밀라노의 설원과 빙판 위에 메달보다 선수들의 땀방울이 더 빛나길 바란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