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연휴기간 영덕군 곳곳에서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원전 유치가 영덕을 살릴 기회’라는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가족과 친지들 사이에서도, 시장과 식당, 마을회관에서도 공통적으로 흘러나온 화두는 단연 지역의 미래였다. 86.18%라는 높은 찬성률은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과거 원전 유치 논의 때와는 분명히 다른 흐름이다. 그만큼 지금의 영덕은 절박하고, 군민들의 생각은 현실적이다.지방 소멸이라는 말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인구는 줄고, 청년은 떠나고, 지역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 아니겠는가”라는 말에는 군민들의 솔직한 심정이 담겨 있다. 경제가 살아야 사람이 머물고, 사람이 있어야 지역이 유지된다. 원전 유치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발전소 건설 문제가 아니라, 영덕의 존립과 직결된 선택지로 인식되고 있다.▣ 왜 지금, 원전 유치인가원전 유치가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첫째, 일자리 창출 효과다.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고, 운영 단계에서도 안정적인 고용이 이어진다. 직접 고용뿐 아니라 협력업체, 지역 상권, 서비스업 전반에 걸쳐 파급 효과가 발생한다. 이는 청년층 유출을 완화하고 외부 인구 유입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둘째, 지방재정 확충과 세수 증대다.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금, 지방세 수입 증가 등은 열악한 군 재정을 보강하는 현실적인 수단이 된다. 이를 통해 교육, 복지, 의료, 문화시설 등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인프라에 재투자할 수 있다.셋째, 인구 유입과 지역 활력 회복이다. 원전 종사자와 가족이 정착하면 자연스럽게 학교, 병원, 상업시설 이용이 늘고 지역 공동체가 살아난다. ‘아이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는 영덕’을 기대하는 마음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넷째, 기반시설 확충이다. 도로, 상하수도, 주거단지, 공공시설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이 확충되면서 지역의 전반적 생활 여건이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이러한 기대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에너지 정책 환경의 변화, 원전 안전기술의 발전, 무엇보다도 군민들의 인식 변화가 눈에 띈다. 과거에는 찬반이 첨예하게 맞섰다면, 지금은 지역 생존이라는 절박함이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과거 한국수력원자력과 관련한 신규 부지 논의가 무산되었던 경험은, 이번에는 더 성숙하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그러나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그렇다고 해서 기대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원전 유치는 장기적이고 중대한 결정이다. 몇 가지 핵심 과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첫째, 안전성에 대한 확신과 투명성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원전에 대한 안전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 사고 가능성,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 등에 대해 과학적 근거와 투명한 정보 공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군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동의가 이루어진다.둘째, 환경과 지역 산업과의 조화다. 영덕은 청정 자연과 해양 자원을 기반으로 한 지역이다. 어업과 관광 산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상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원전이 기존 산업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하도록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셋째, 주민 수용성과 공정한 절차다. 86.18%의 찬성률은 중요한 지표지만, 소수 의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론화 과정과 합리적 의사결정 절차가 필수적이다.넷째, 장기 발전 전략과의 연계다. 원전 유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부유하고 행복한 영덕’이다. 확보된 재원과 인프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중장기 비전이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영덕이 살아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정부가 원전 유치를 추진하는 시점에 군 행정과 군민이 뜻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조급함이 아니라 성숙함 위에 세워져야 한다.행정은 정확한 정보와 전략으로 준비하고, 군민은 감정이 아닌 이성과 미래 비전으로 판단해야 한다. 지역 정치권과 사회단체, 경제계, 청년층까지 폭넓은 참여 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원전 유치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원전은 단순한 발전소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선택이다. 경제 회복, 인구 유입, 세수 증대, 고용 창출이라는 군민의 바람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기대와 우려를 함께 직시하는 균형 잡힌 자세가 필요하다.영덕이 다시 살아 숨 쉬는 고장이 되기를, 사람이 모이고 아이가 자라고 어르신이 안심하고 살아가는 터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이번 논의가 지역의 분열이 아니라 통합으로, 갈등이 아니라 성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영덕의 미래는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군민 모두의 지혜와 결단이 모일 때, 비로소 새로운 영덕의 항로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