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불 복구에 1조2천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며 외형적 재건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음 산불이 오면 또 똑같이 탈 것"이라는 비관적인 진단이 나온다.대규모 비용 투입에도 산불에 취약한 근본적 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이다.전문가들은 이제라도 대응 패러다임을 `진화`에서 `예방`으로 바꾸고, 수종 전환 등 중장기적 산림 구조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조원의 함정…`미래 예방`보다 `과거 수습`에 치우쳐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의 성격이다.이미 투입된 1조2천억원 중 상당 부분은 이재민 구호와 폐기물 처리, 파손된 시설 복구 등 사후 수습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정작 대형 산불 확산을 막을 핵심 인프라인 `임도(산불 진압용 도로) 확충`이나 `내화 수림대 조성` 등 예방적 차원의 투입은 상대적으로 미비했다는 지적이다.경북도는 오는 2027년 국비 확보를 목표로 임도 확충과 산불 감시용 헬기 임차, 감시 인력 지원, 피해목 벌채 등 11개 사업에 총 1천161억 원 투입을 추진하고 있다.모두 필요한 사업이지만, 산불이 발생하기 전 지역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예산표에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산림재난 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 대응의 핵심 문제로 예방이 아닌 `진화 중심 패러다임 전환`을 꼽는다.경북도가 지난 17일 발표한 `산불 발생 1년, 추진 현황` 자료에도 경북소방본부는 산불 신속대응팀 확대, 야간산불 매뉴얼 개발, 대형 임차 헬기 운영 등 진화 역량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반면 방화 공간 확보 같은 사전 예방 설계는 현황 자료에서 구체적 실행 내용을 찾기 어렵다.실제로 경북도 자료상 `예방` 항목 예산은 2025년 1천338억원, 2026년 200억원으로 전체 복구·재창조 예산의 10% 안팎에 그친다.산림과 주거지 경계 관리나 마을 단위 방재 설계처럼 산불 발생 전을 겨냥한 구조적 대책은 아직 제도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안현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산림경제연구실 연구위원은 "최근 펜션, 요양원, 아파트 등이 산림 인근에 들어서며 산불 위험도와 그에 따른 인명·재산 피해 위험이 커지고 있지만 관련 규정은 제자리걸음"이라고 비판한 뒤 "우리나라도 산림과 주거지 사이에서 산불 중심 이격 거리 설정, 방화 시설 설치 등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교한 산불 예방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름 장작` 소나무 숲, 다시 반복될 악순환수종 전환 실패도 뼈아픈 대목이라는 지적이다.경북 지역 수종은 송진을 머금어 불에 취약한 소나무 위주의 침엽수림이 주를 이룬다.소나무는 활엽수보다 1.4배 더 뜨겁게 타고, 불이 지속되는 시간도 2.4배 더 길다.2020년 기준 경북 소나무(소나무·해송) 숲 면적은 45만7천902㏊로 강원(25만8천357㏊), 경남(27만3천111㏊)보다 훨씬 넓어 전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이에 따라 재해 복구 사업을 할 때 상대적으로 불에 강한 활엽수 중심의 내화 수림대를 조성해야 한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조언했다.산불 위험을 충분히 낮추기 위해 `탄소 중립`에서 더 나아가 `탄소 감축`이 병행돼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됐다.흔히 산불의 원인으로 낙뢰나 담뱃불, 실화 등이 거론되지만 진짜 문제는 기온·습도·바람이 만들어 낸 기후 조건이란 전제 아래, 탄소 감축 시나리오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줄면서 기온이 내려가고 습도가 높아져 산불이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 크게 줄었다는 설명이다.민승기 포항공대(POSTECH) 환경공학부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을 통해 "탄소중립은 산불 위험 증가를 멈추는 단계일 뿐 이미 커진 위험을 되돌리는 해법은 아니다"며 "극한 산불로부터 사회와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탄소중립을 넘어선 탄소 감축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특히 고령화된 농촌 특성을 반영한 주민 참여형 방재 인프라와 데이터 기반의 정교한 산불 예측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제시됐다.채희문 강원대 교수는 "실시간 데이터를 확보해 산불 확률을 정교하게 예측하는 시스템을 정부가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전문가들은 단순 시설 복구에서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생계와 공동체를 함께 복원하는 `지속 가능한 재생 모델`을 갖춰야만 반복되는 재난과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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