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대형산불이 터진지 1년6개월이 지났지만 대응체계는 여전히 구멍숭숭이다.2025년 3월 영남권에서 발생한 산불은 사망자 31명, 이재민 3만3000여 명, 재산 피해 약 1조 974억 원을 손실을 입었다.산불영향구역만 4만8239ha에 달했던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재난이다.영덕에서만도 10명이 숨졌다.영덕 지역은 산불로 군 전체 면적의 약 27%가 불에 타며 1만6208ha 피해를 입었다. 영덕은 대한민국 최대 규모 산불 피해 지역으로 손꼽힌다.산불대재앙 이후 정부가 산불 대응 단계를 개편하고 주민 대피계획을 보완했다.하지만 초기 현장 지휘와 주민 대피체계는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산림청장의 지휘권 발동 기준이 모호한 데다 주요 피해지역 일부에서는 공무원 교육과 주민 모의훈련조차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이 사실은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일 ‘영남권 대형산불 1년, 무엇이 바뀌었나?’를 주제 보고서 발간 토론회에서 확인됐다.▣ 괴물 산불 1년6개월 과제 산더미토론회에서 지난 1년간의 변화를 살펴봤다.이 결과 △산불 대응 시 불명확한 현장지휘체계 문제 △지역 맞춤형 주민대피 가이드라인 마련 △산림사업 부실 방지를 위한 산림사업법인 관리·감독 강화, △임산물 재해보험 대상 및 재난복구비 지원에 관한 법·제도적 한계 △공공폐자원관리시설 확보 △피해자 장기 건강관리 방안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너무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정부가 올해 대형산불이 2건으로 감소한 것을 산불 종합대책의 성과로 평가하지만, 이는 역대급 산불이 발생한 지난해와 단순 비교한 수치라는 것이다. 평년 수준이었던 2024년과 비교하면 올해 5월 말까지 산불 발생 건수는 279건에서 367건으로 늘었고, 피해면적도 123.27ha에서 727.58ha로 약 6배 증가했다.산림청이 총력 대응을 펼쳤지만 대형산불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발생 규모 또한커졌다는 점은, 기상 요인 등에 따른 일시적 수치 변화를 넘어 국가 산불재난대응체계의 실질적 한계와 구조적 위험성이 여전히 상존함을 보여주고 있다.이 보고서에서는 산불의 예방, 대응, 복구 단계별로 전년도 특별보고서의 제안사항, 정부의 개선 내용, 그리고 이에 대한 평가 및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산불 예방 단계는 △대형산불 예방을 위한 산림사업 △드론을 활용한 산불 예방·진화활동 △산불 원인자 처벌 및 신고 포상제도 등 3개 분야의 개선과제를 제안했다.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올해 산불이 크게 나지 않은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평년보다 더 많이 발생했다.대형산불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비수도권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재난에 무감각한 것이 현실인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경각심을 갖고 대책을 점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모호한 지휘 기준···초기 컨트롤타워 공백 여전정부는 지난해 10월 산불 종합대책을 통해 기존 ‘초기 진화·확산 1~3단계’로 운영하던 대응 단계를 ‘초기 진화·확산 1~2단계’로 축소했다. ‘재난성 대형산불 우려 시’에는 산불 규모와 관계없이 산림청장이 지휘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산림청의 역할도 강화했다.하지만 ‘재난성 대형산불 우려 시’라는 발동 요건이 모호해 초기 진화 단계의 컨트롤타워 공백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산불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확산된 뒤에야 산림청장이 지휘하는 방식으로는 작은 불이 대형산불로 번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배재현 국회입법조사처 행정안전과장은 “큰 산불과 작은 산불이 따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데, 소규모 산불 단계의 초기 대응을 외면한 채 대형 재난 상황에서 선별적으로 산림청이 담당하겠다는 접근은 초동·선제 대응이라는 재난관리의 기본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산불 초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대형산불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해야 하는데, 산불 규모를 기준으로 지휘체계를 마련한 것은 이론적인 대응체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산림청이 모든 소형 산불을 직접 지휘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중앙의 진화 자원과 지휘력이 분산될 수 있는 만큼, 소형·중형 산불은 지자체가 중심이 돼 대응하고 산림청은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현실적으로는 산림청과 지자체의 자체 대응역량을 강화하고 공조체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때문에 “산림청 지휘부와 지휘관의 산불재난 지휘역량 훈련을 체계·의무화하고, 지자체와의 협동대응훈련도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지역에서 산불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까지 고려한 적극적인 훈련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대피계획···영덕군 산불교육 無주민 대피체계도 제도 개선이 현장 교육과 훈련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법조사처 조사 결과 지난해 영남권 대형산불 이후에도 울산시와 울주군, 의성군, 영양군, 영덕군, 산청군은 공무원 대상 자체 산불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다. 영양군과 영덕군에서는 주민 대상 모의훈련도 실시되지 않았다.정부가 ‘초고속 산불 대비 주민대피체계 개선방안’을 내놓고 지자체별 대피계획을 개정했지만, 이를 실제 상황에서 작동시킬 준비는 미흡한 셈이다.이 교수는 “대형산불은 사실상 진화가 어려운 만큼 선제적인 대피를 통해 인명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현재 산림청과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등이 각각 대피체계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부처별 결과가 개별적으로 정책화될 경우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 각 부처의 연구와 정책을 종합해 전체적인 대피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전문가들은 대피계획에 이동수단과 대피 조력자, 원거리 대피소 등 구체적인 실행수단을 담아야 한다고 주문했다.정민수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연구관은 “피해자들이 대피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대피를 준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피를 포기했기 때문으로, 그 비율이 57.7%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형재난에서는 개인과 개별 시설의 물리적 한계가 뚜렷한 만큼 이송 책임을 개별 시설에 전가하기보다 지자체가 관내 가용 운송자원을 직접 통제하고 투입하는 광역 단위의 ‘대피 모빌리티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대형산불 예방을 위한 산림사업대형산불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내화수림 조성·확대, 숲가꾸기 사업 활성화, 산불진화임도 확충 등을 제안했다.정부가 내화수림 조성 확대 등 산불확산 방지를 위한 산림사업을 추진하기로한 점은 긍정적이나, 관련 예산 확보와 실질적인 추진 실적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향후과제는 내화수림 조성사업 규모 확대, 사유림의 내화수림 조성 활성화를 위한 국고보조율 상향 및 임업분야 공익직불제 활용, 숲가꾸기 사업의 지방자치단체 보조비율확대, 산불진화임도 확충을 위한 예산 확대 및 국고보조율 상향조정, 산림사업법인 등록제 및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드론을 활용한 산불 예방·진화 활동을 해야한다고 했다.산불 조기탐지를 위해 드론을 활용한 산불 예방활동 확대 및 「항공안전법」상 비행 규제 완화(특례 적용)를 제안했다.정부는 열화상드론 확충, 군집・대형 진화드론 개발 및 농림위성 활용 등 첨단 산불감시・진화체계를 구축, 항공안전법 개정과 규제특례 추진을 통해 드론운용 기반을 개선했다.첨단기술 기반의 산불 감시・진화체계 구축이 추진되고 있으나, 국산드론의 생산·공급 기반과 핵심부품 공급망, 150kg 초과 대형드론 운용을 위한 조종자자격 및 안전인증체계는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150kg 초과 대형 진화드론 운용을 위한 조종자 자격 및 안전인증체계를 마련, 핵심부품 공급망 안정화와 국내 생산기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산불 시스템 ‘탁상공론’식 체계지난해 6월27일 국회입법조사처는 국회 소통관에서 ‘대형 산불에 대한 국가적 대응 과제(2025년 영남권 대형 산불 사태를 계기로)’ 특별보고서 발간 기념 기자회견을 열었다.기자회견에서 산불 대비 체계를 예방과 대응, 복구 등 세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의 주관기관을 명확히 할 것을 제언했다. 예방은 산림청, 대응은 소방청(진화)과 지자체(주민 대피), 복구는 산림청(산림), 행정안전부·지자체(이재민 구호)가 맡는 식이다.현재 산불지휘체계는 기초자치단체장(산림피해면적 100㏊ 미만), 광역자치단체장(산림피해면적 100㏊ 이상), 산림청장(산림피해면적 1000㏊ 이상)으로 구분된다.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이 시스템은 산불이 강풍을 타고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경우 혼란만 야기하는 ‘탁상공론’식의 체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이 처장은 “이번 영남권 산불을 보면 산림은 물론 인명과 시설물 피해가 상당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산불 대응체계는 산에서 발생한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런 복합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선 산림과 사람, 시설물을 통합 전문화한 화재 예방 정책과 진화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그는 “산불지휘권은 소방청으로 일원화하고 주민 대피 등은 지자체가 주관해야 한다”며 “진화와 대피가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대규모 인명과 재산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예방으로는 불에 강한 내화수림 조성을 최우선과제로 제시했다. 이 처장은 “산불이 확산하는 원인 중 하나가 소나무 중심의 조림 정책이라는 지적이 있다. 산불 위험과 발생 지역엔 내화수림을 우선 조정하고 사유림의 경우 국고보조율 확대와 공익직불제를 활용해 산주들의 참여를 유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재민 임시 주거용 조립주택 거주 기간과 피해보상 확대, 건강관리 대책 등 피해 주민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이 처장은 “우리는 지난 10년간 산불은 ‘산에서만 발생하는 불’이라 생각하며 대응했다. 이번 영남권 산불은 산림뿐 아니라 막대한 인명과 시설물 피해를 남겼다. 이젠 패러다임(paradigm=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을 전환해야 산불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기사제공/대구광역일보 최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