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기다려지는 요즘, 다가올 계절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지친 일상의 활력소가 되고 마음을 힐링 하고 싶다면 이번 주말은 가족과 함께 청송에서 자연을 노래하자꿈같은 이상세계의 신선을 연상시키듯 태고의 신비를 가득 품고 있으며, 푸른 숲과 맑은 물이 적절히 어우러져 어머니 품속 같이 아늑한 고장. 푸르른 노송에 학이 깃들어 있는 수묵화 한 폭을 연상하게 하고, 그런 만큼 산이 높고 늘 푸른 나무들이 가득한 곳. 또한 투명한 물빛은 도시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명경같이 맑은 물은 오랫동안 감추어진 우리네 자아를 깨우쳐 준다. 경상북도 북동쪽 우리민족 전체의 역사 흐름과 그 맥을 함께 해 온 청송은 태백산맥의 영향을 받아 기운 찬 산줄기가 아늑하게 사람들을 품고 북쪽과 동쪽 그리고 남쪽이 산악으로 중첩되어 기복이 심하지만 높은 곳은 높은 대로 낮은 곳은 낮은 대로 운치를 더하고 태행산과 주왕산, 비봉산과 보현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그곳이 보여주는 자연의 신비는 우리를 한없이 놀라게 한다. 알면 알수록 묘한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이곳 청송은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마음과 가슴으로 느끼고 배워가며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가 던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어느새 가슴은 풍요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주왕산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이라 불리는 주왕산은 1976년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북 제일의 명산으로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것 같다하여 옛날에는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렸다. 뫼산(山) 형상의 기암아래 대전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편안한 산책길로 들어서면 계곡 양쪽에 전설이 묻어 있는 신비스러운 바위석벽들이 도열하고 있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이 주왕산을 일러 ‘모든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칭송하였다.급수대 바위 정상에는 신라왕손 김주원이 살았다는 대궐터가 있으며 꼭대기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렸다고 해서 급수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풍경화에 나옴직한 학소대와 병풍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묻어 있다. 그 옛날 이곳에 청학과 백학 한 쌍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는데 어떤 포수가 백학을 쏘아 잡은 후 청학이 며칠을 슬피 울다 날아갔다고 하여 왼쪽 바위를 학소대라 불렀고 오른쪽 바위는 마치 병풍을 세워놓은 것 같아 병풍바위라고 불렀습니다. 떡 찌는 시루를 닮은 시루봉에는 신선의 전설이 서려있습니다. 그 옛날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어떤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었는데 너무 측은한 나머지 신선이 내려와 불을 지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연유 때문일까, 시루봉은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인다.계곡의 속내 깊숙이 들어가면 3개의 폭포가 연이어 등장해 보석처럼 반짝이는 옥구슬을 쏟아내고 있다. 대전사부터 시작해서 1.2.3 폭포를 지나 내원동 마을까지 평지수준의 산책코스가 이어져 노약자들도 쉽게 산행에 나설 수 있다.계곡을 따라 폭포까지 갔다면 하산은 주왕산 자연관찰로를 이용하면 좋다. 학소대, 급수대, 망월대 전망대 등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야생, 동식물을 직접 관찰 할 수 있다. 덤으로 주왕암과 주왕굴 그리고 무장굴을 둘러볼 수 있다. 고요한 주산지
주왕산 한 편에는 약 300여년의 세월이 전해지는 저수지 `주산지`가 있다. 깊은 주왕산 자락을 따라 물을 모아 만든 주산지 한가운데는 머리카락을 바람에 살랑이고 있는 굵은 왕버드나무들이 서있다.주산지는 조선 경종 원년1720년 8월에 착공하여 이듬해에 완공한 농업용 저수지이다. 길이 100m, 너비 50m, 평균 수심 7.8m의 조그만 산중 호수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아름다운 호수는 오랜 역사 동안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는 농민들이 믿고 의지하던 저수지였다.주산지의 가장 큰 매력은 물 속에 박혀 있는 30여 그루의 왕버들고목이 반영이 되어 쌍둥이처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장면이다. 새벽 물안개가 깔리면 꿈속의 풍경처럼 황홀한데 이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로 늘 북적거린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주 배경지로 나왔으며 영화의 내용처럼 속세의 묵은 때를 씻고 마음을 정화시키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다. 원시적인 비경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절골계곡 많은 이들은 절골계곡을 외주왕산에 버금가는 곳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절골계곡은 주왕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계곡으로 원시적인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주왕산의 주등산로가 있는 대전사나 폭포가 있는 쪽 보다는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깨끗한 물이 사철 흐르고 있을 뿐 아니라, 죽순처럼 우뚝 솟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별천지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이 지명은 옛날에는 절이 있어서 절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절의 흔적은 사라지고 `절골`이라는 이름만 남아 있다. 이 계곡은 그 길이가 약 10km에 이른다. 계곡 내에는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아름다운 산세가 주왕산의 본 계곡인 주방계곡과 비교할 때 조금도 손색이 없다. 기암괴석이 우뚝 솟아 있어 조화롭다.
- 등산로 안내 절골코스(13km, 6시간30분) : (1시간40분) (1시간) (1시간35분) (30분) (1시간5분) 절골매표소 → 대문다리(1시간40분) → 가메봉(1시간30분) → 내원마을(1시간5분) → 제3폭포 (30분) → 상의매표(1시간5분) 심부자댁 99칸 송소고택 조선시대 왕비를 3명이나 배출한 청송 심씨의 집성촌인 덕천마을은 조선 영조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에 이거하면서 지었다는 집으로 1880년경에 건축되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심부자의 재력은 9대 2만석으로, 해방 전 일제시대 때도 2만석을 가졌다고 한다. 조선팔도 어디를 가나 자기 땅이 없는 곳이 없었으며, 구한 말 개화기 때는 화폐의 가치와 변동이 심해 나라에 세금을 종이로 납부하다가 다시 화폐로 납부하기도 하였는데 그때 은화로 납부하라는 지시에 따라 안계(지금의 의성 안계)의 자기 소유 전답을 처리하여 화폐로 바꾸니 안계 고을에 돈이란 돈은 전부 모여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을 청송 호박골로 옮기는데 그 행렬이 10리나 뻗쳤다고 한다.어느 날 한밤중 동네 도둑이 든다는 소문을 듣고 집안 식구들은 모두 피신하고 안사랑 마님 혼자서 집을 지키는데 한 밤중에 도적 수 십 명이 몰려들어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때 백발의 안방 마님이 나아가 “물건을 훔치러 왔지 기물을 왜 부수는가. 내가 문을 열어 줄 터이니 가지고 가고 싶은 대로 가져가라.” 하며 직접 열쇠를 가지고 광이나 곡간을 열어 주었더니 수 십명의 도둑들이 모두 한 짐씩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그 후 남은 돈으로 이 집을 지었다 하니 그때 돈이 얼마나 많았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99칸 만석꾼의 집인 송소고택은 살림공간, 휴식공간, 작업공간을 별도로 둔 조선상류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솟을대문에 홍살을 설치하였으며, 큰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으로 크고 화려한 건물로 주인이 거처한 곳이다. 우측에 작은 사랑이 있고, 그 위로 안채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ㅁ` 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의 교창을 달았다. 건물에 독립된 마당이 있으며,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등 조선시대 후기 상류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늘에 가득한 별과 고요한 풀벌레 소리에 잠들 수 있는 한옥체험은 오랜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먹고 장작불로 달궈진 온돌방에 허리를 지지면 다음날 몸이 개운하다. 마당에서는 민속놀이 5종 경기(제기차기, 새총 쏘기, 투호, 칠교, 국궁)을 할 수 있다. 덕천마을은 전통한옥과 돌담길이 예쁘게 꾸며졌는데 토종 감을 이용한 염색체험과 사과따기, 감자. 고구마 캐기, 알밤줍기 등 흥미로운 농촌체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인근 양수발전소와 연계해 일정을 짜면 좋다.
신비의 계곡 얼음골계곡
32도 이상이 되면 돌에 얼음이 끼고 32도 이하가 되면 얼음이 녹아버린다는 신비의 계곡인 얼음골은 산 전체가 석빙고와 다름없다. 이끼 낀 바위를 감싸고 흘러내리는 청산 옥계수에 손을 담그면 얼음같이 차기 때문에 한여름 폭염 속에서도 시원한 야영을 즐길 수 있다. 계곡을 건너면 가슴 깊숙한 곳까지 짜릿하게 하는 약수가 나그네의 갈증을 덜어주며, 높이 60m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 물줄기는 무더운 여름마저 비켜 간다. 이 인공폭포는 한겨울에는 빙벽으로 바뀌어 2011년부터 2015년 까지 매년 1월 이곳에서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이 개최된다. 많은 이들이얼음벽을 타고 올라가는 클라이머를 보면서 가슴을 졸이게 된다. 빙벽은 봄까지 남아 있으며 3월이 되면 따뜻한 날씨로 인해 빙벽이 녹기 시작하면서 빙벽이 마치 빙산이 무너지는 듯이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을 떨어뜨린다. 얼음골에서 해월봉을 지나 구리봉을 거쳐 원구리로 하산하는 등산코스도 해볼 만하다. 정상에서 산태극과 물태극이 만들어 놓은 장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행을 마치고 마시는 시원한 약수 한잔은 어떤 보약보다 좋다. 부남면에서 얼음골까지는 짙은 사과향을 내품는 애플드라이브코스가 이어진다. 4월 사과꽃 필 때와 10월 주렁주렁 사과가 매달려 있을 때 달려볼만하다. 설탕 빠진 사이다 맛을 자랑하는 달기약수는 아무리 가물어도 솟아나는 양이 일정하고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으며 색깔과 냄새가 없다. 위장병, 신경통, 빈혈 등에 효과가 있어 약수를 뜨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고 있다. 조선 철종 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하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마을사람들과 수로공사를 하던 중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약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물을 먹어 보았더니 트림이 나오고 속이 편안하여 그 후 즐겨마셨다고 한다. 이 약수로 밥을 지으면 밥이 푸른색을 띠며 찰기가 있어 밥맛을 돋워주며 물이 좋아 아무리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약수가 솟아나는 소리가 마치 ‘고고고’ 닭의 소리 같다고 하여 달기약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걸 증명하듯 약수탕 근처에는 30여 군데 닭백숙 집이 성업 중이다. 백숙에 황기, 대추, 엄나무, 두충, 녹두를 넣고 닭을 건져내 먹는데 톡 쏘는 탄산수가 닭의 지방을 제거해주어 고기 맛이 담백하고 육질이 쫀득할 뿐 아니라 원기까지 보충해줘 보양식으로 최고다. 상탕, 중탕, 하탕, 신탕 등 5~6곳에서 약수가 솟아나는데 물맛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천연 탄산수 달기약수탕
청송읍내에 있는 솔기온천은 소나무 ‘솔(松)’과 기운 ‘기(氣)’의 합성어로 십장생의 하나인 소나무의 기운이 서린 온천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하 710m 무공해 천연암반에서 솟아나온 물은 알카리성 중탄산나트륨온천으로서 전국 최고의 수질을 자랑한다. 온천수가 미끈거려 마치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피부미용은 물론 신경통, 류마티스성 질환, 근육통, 노화방지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솔기온천은 청송(주왕산)지역 유일의 베니키아 가맹 최고급 관광호텔인 "주왕산 온천 관광호텔"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알칼리성 성분으로는 국내 최고의 수질을 자랑한다. 주왕산 국립공원과 여러 관광명소를 탐방하고 피로회복, 건강 증진을 위한 최고 수질의 온천수를 솔기온천에서 즐겨 보기 바란다.
신성계곡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신성계곡은 청송 8경 중에 제1경인 방호정부터 시작해서 백석탄에 이르기까지 15km의 긴 계곡을 말한다. 낙동강 상류 맑은 물, 너른 자갈밭, 운치 있는 숲 그리고 야영장까지 갖추고 있어 가족단위 계곡피서지로 손색이 없다. 물길이 만들어낸 바위절벽과 물돌이동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그 물길을 옆에 끼고 내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도 일품이다. 수석 같은 바위군상인 백석탄은 마치 알프스의 연봉을 연상케 한다. 백석탄 인근 장군대는 인조반정에 가담한 김한룡이 순절한 부친의 갑옷과 투구를 묻었다는 전설이 깃 들여 있다. 청송자연휴양림
울창한 숲,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아름다운 경관 등 숲의 좋은 점들만 모아서 그 속에서 휴식, 휴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시설을 갖춘 국민 모두의 휴식공간이다. 청송과 포항을 잇는 31번 국도가 휴양림을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산세가 수려하고, 수목이 울창하여 사계절 멋을 달리하는 경치와 대기환경측정결과 전국에서 가장 맑은 공기로 판명되어 삼림욕을 즐기기에 최적지이며, 주변 관광지로는 20분 거리에 국립공원주왕산과 달기약수탕, 주산지, 얼음골 등이 있으며, 1시간 정도면 동해안을 갈 수 있어 삼림욕과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야송미술관
청송군 출신 동양화가 야송(野松) 이원좌(李元佐) 선생께서 70평생을 오직 한길만을 걸어오시면서 이루어 놓은 작품 360여점을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이다. 폐교된 신촌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조성된 야송미술관은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기 때문에 한국화가 더욱 가깝게 보인다.대전시실에는 야송선생의 대표작인 무릉하운도, 둥글바우화첩을 비롯한 한국화 작품 30여점과 도자기 작품 20여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중전시실은 주왕산 8곡병풍, 청량산 16곡병풍, 화양8곡 병풍등 주로 병풍 작품 15여점과 도자기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길이 46m, 높이 6.7m의 초대형 작품인 청량대운도는 청량대운도전시관이라는 전용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작품의 규모에 한번 놀라고 그 섬세한 붓놀림에 무릎을 치게 만든다.소전시실에는 경북지역에서 활동한 원로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미술도서관은 야송선생이 미술입문이후 지금까지 모아온 미술 관련 서적 과 자료 1만 5천 여 점이나 소장하고 있어 하루 종일 쾌적한 실내에서 미술세계에 흠뻑 빠져볼 수 있다. 야외 운동장에도 근사한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청송양수발전소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에 위치한 청송양수발전소는 국내 6번째로 건설된 양수발전소로 국내에서는 최초로 지자체와 주민이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건설한 발전소로써 30만kw급 발전기 2기, 60만kW의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상부댐 노래호의 물을 낙하시켜 발전을 하고 하부댐 청송호에 모인 물을 심야에 다시 상부댐으로 퍼올려 발전하는 방식의 청송양수발전소는 관광지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절경을 가지고 있다. 굽은 도로를 따라 상부댐을 오르다보면 단풍길, 등나무길 등 다양한 가로수를 만나게 된다. 동물이 지나가는 길도 있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상부댐 전망대에 올라 서면 안동, 영양, 영덕, 포항 등 낙동정맥의 산자락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장관을 보게 될 것이다. 저 멀리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영덕풍력발전단지도 보인다.발전소 견학은 홍보관 관람, 상·하부댐 및 지하발전소 견학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주일 전 사전 예약 시 지하발전소 견학이 가능하며 지하발전소 현장견학은 안전관리필요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다. 방호정
방호정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뽐내고 있다. 자연과 한 몸이 된 정자의 절묘한 위치를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주왕산, 주산지의 유명세에 가려 빛을 보고 있지 않지만 방호정부터 백석탄에 이르는 신성계곡이야말로 청송의 숨은 진주이다. 비단결 같은 계곡이 만들어낸 물돌이동과 기암괴석이 낙동강 상류를 일구어내기 때문이다.방호정을 만나려면 아치교인 방호교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 위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면 절묘하게 흘러가는 물돌이동을 감상할 수 있다.조선 중기 학자인 방호 조준도가 44세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 안동 권씨를 사모하는 마음에 어머니 묘가 보이는 곳에 정자를 세웠기에 처음에는 사친당이라 불렀다.마루는 물론 온돌방과 부엌까지 있어 정자의 기능뿐 아니라 숙식의 공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으며 유생들이 쓴 현판이 걸려있다. 조선 중기 건축으로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섬세한 구조기법이 변형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여름에는 물놀이장으로, 가을에는 두툼한 낙엽을 밟을 수 있는 곳이다.
청송백자 전수장
청송 부동면 신점리 법수골에 위치한 ‘청송백자 전수장’은 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청송백자를 전승하기 위하여 2009년 7월 1일 개관되었다.새로 단장한 가마굴, 사기움은 당장이라도 백자가 나올 태세이다. 가마터 뒤편에는 도석(청송백자의 원료)을 캔 광산이 옛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주변에 과거 주막으로 사용되었던 건물과 광산사무실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단순한 기능전승을 넘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도 제공하고 있다.청송백자는 문경백자와 함께 경북지역의 양대 산맥을 이룬 조선시대 대표 생활도자기로 흙 대신 도석이라는 돌을 빻아 만들어, 다른 도자기보다 기벽이 매우 얇고 가벼운데다 설백색의 흰색이 특징이다.기능보유자인 고만경옹은 1944년(15세)부터 1958년까지 13년간 이곳에서 일해 온 청송사기의 산증인으로 전승·보존활동에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