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과 묘목값을 지원해준다고는 하지만, 지금 다시 심어도 최소 5년은 지나야 농약값 정도나 겨우 건질 수 있습니다."지난 10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동변1리에서 만난 강병학(64) 씨는 1년 전 대형 산불로 황폐해진 자신의 과수원을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강 씨는 "애들은 이제 농사를 그만두라고 하지만 평생 해온 일을 어떻게 그만두겠느냐"며 "80대 동네 어르신이 불에 타버린 나무를 베어내고 새 농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의성군 안계면과 안평면 두 지점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안동·청송·영양·영덕으로 번지며 산림과 농경지에 광범위한 피해를 남겼다.
농업과 산업, 산림 생태계 전반에 남은 상처는 1년이 지나도 여전히 깊다.
강 씨의 사과 농장 역시 당시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산불이 직접 지나간 나무는 바로 고사했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나무들도 강한 열기와 그을음 피해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강 씨의 과수원뿐 아니라 산불이 휩쓴 지역 곳곳에서는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내부가 손상돼 생육이 크게 떨어지는 나무가 적지 않다.
그는 "산불 직후에는 괜찮아 보였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가지가 말라가거나 꽃이 제대로 피지 않는 나무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과수 농가는 산불 피해가 장기간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무가 완전히 고사하면 새 묘목을 심어도 수확까지 최소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올해는 상황이 조금 나아지기를 기대하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
강 씨는 "묘목을 다시 심어도 제대로 열매를 맺기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공백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토양 관리를 위해 지난해 여름에는 콩이라도 심어 10월에 타작했다"며 "올해는 농사 여건이 조금이라도 나아져 주민들이 다시 일상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점곡면 명고리에서 농원을 운영하는 이인재(73) 씨도 산불로 호두나무와 밤나무 3천 그루 등 7만평(23만1천404㎡) 규모 산지 피해를 봤다.
이 씨는 "43세에 귀농해 30년 동안 일군 농장이 한순간 불에 타버렸다"며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다시 숲을 일궈내는 것이 내 꿈"이라고 말했다.
산불은 영덕 지역 특산물인 송이 생산에도 큰 타격을 남겼다.
송이는 산림 환경이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자라는 만큼 산불 피해 이후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김석환 영덕산림조합 상무는 "불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지난해 송이가 하나도 자라지 못했다"며 "송이는 산림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생산량 변동이 큰 작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불 당시 강한 열기로 인한 영향이 토양 깊숙한 곳까지는 미치지 않았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김 상무는 "전문가들은 땅속까지 완전히 타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최소 10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송이가 다시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기대했다.
다만 그 기간 송이 생산에 의존해온 지역 주민들의 생계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일부 임가들은 송이를 대신할 대체 작물 재배도 고민하고 있다.
김 상무는 "송이가 다시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대체 작물을 찾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두릅이나 초피나무 같은 작물 재배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산불 피해는 농업에만 그치지 않았다.
안동 남후농공단지에서는 입주 기업 42곳 가운데 24개 업체가 화재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거나 생산 차질을 겪었다.
이곳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민춘홍(51) 씨는 지난해 산불로 공장이 전소됐다.
화재 이후 공장 건물을 다시 짓고 설비를 교체하는 등 시운전을 재개하기까지 열달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민 씨는 "시설 복구와 장비 교체에 많은 돈과 시간이 들었지만, 운전 자금이 부족해 정작 기기조차 돌리지 못하는 현실"이라며 "정부 조달 물품이라도 산불 피해 기업에 한시적으로 계약 우선권을 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남후농공단지 산불피해대책위원회는 중소벤처기업부와 경북도 등 정부 당국에 "기존 지원책으로는 대출금 상환조차 벅찬 실정"이라며 "강원도 고성 산불 선례처럼 소상공인 재기를 위한 대출 상환 기간 연장과 이자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길선 안동 남후농공단지 산불피해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화마는 지나갔지만, 남후농공단지 기업인들에게는 여전히 경제적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며 "지역 경제 뿌리인 기업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보다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행정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