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1년차 막바지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이 `내치(內治)`의 고삐를 단단히 죄려 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사건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가 장기화되고, 특히 최근엔 종교계 일각으로부터 `정권 퇴진` 요구까지 터져나오는 등 연말 정국의 불확실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국민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에 대한 무관용(無寬容) 입장을 천명하며 지지층 결속에 나섰으며, 26일엔 정책현장 방문 행보를 재개하기도 했다. 세밑 민심잡기의 `이른` 시동을 건 셈이다.
박 대통령은 26일 오후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여성가족부 공동 주최로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열린 `시간 선택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 현장을 찾았다.
그간 유연한 일자리의 창출과 `일과 가정의 양립` 등을 위해 공공·민간 부문의 시간 선택제 일자리 확대 필요성을 강조해온 박 대통령은 이날 채용 박람회 현장 방문에서 경력단절 여성 등 구직자들을 격려하고 이들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날 채용 박람회 현장 방문에 앞서 지난 21일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자유학기제` 연구학교로 지정돼 올 2학기 들어 자유학기제를 시범운영하고 있는 사당동 소재 동작중학교를 찾아 관련 수업을 직접 참관하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과 함께 간담회를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현장방문 일정에 대해 청와대는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현장에서 직접 정책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일선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목적에서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달 초 영국·프랑스·벨기에 등 서유럽 국가 순방을 끝으로 연내 계획했던 해외에서의 정상외교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만큼 올 한해 남은 기간엔 국내에서 진행돼온 그동안의 정책 추진성과를 정리하고 그 보완책으로 마련함으로써 집권 2년차를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이날 현장 방문 주제였던 `시간 선택제 일자리`는 기존의 시간제 비정규직 일자리와 달리, 근로자들이 자신의 여건에 맞게 근로시간을 선택해 일하되 복리후생 등의 혜택은 모두 제공받는 정규직 일자리로 `임기 내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주요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또 `자유학기제`는 공교육 강화를 위한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사항이자 정부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서 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시험부담에서 벗어나 진로탐색 등의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주변에선 박 대통령의 현장행보가 "최근의 정국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박 대통령은 이미 지난 18일 취임 후 첫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구축 등 4대 국정기조에 따른 분야별 정책 추진상황을 설명하면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주요 법안을 "제때 처리" 함으로써 이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여야 의원들에게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여야가 국정원 등의 대선개입 의혹사건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제(특검) 도입 문제를 놓고 공방을 이어가면서 정치권에선 `준예산` 편성 가능성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박 대통령은 전날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국민을 대변하고 그 위임을 받은 정치권에서 국민 생활과 직결된 예산과 법안에 정파적으로 접근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나섰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여전히 박 대통령을 상대로 국정원 관련 문제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어 그 간극이 쉽게 메워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청와대가 여의도 정치권을 상대로 이른바 `민생 대(對) 정쟁`의 차별화된 구도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 박 대통령의 정책 관련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여기엔 최근 두 달간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50%대에 이르는 다수 여론이 현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는데 따른 `자신감`도 일정 부분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채용 박람회 현장 방문 뒤에도 주중에 지역의 민생정책 현장을 방문, 주요 국정과제 등의 이행상황을 직접 점검하면서 `정쟁(政爭)과의 거리두기`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청와대는 또 조만간 국민경제자문회의와 무역투자진흥회의 등 박 대통령 주재 경제 회의를 열어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등의 각종 추가 지원 방안을 내놓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도 "우리가 협의·지시한 내용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항상 체크해 달라"면서 "연말까지 남은 기간 올해 추진해온 정책들의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금년에 하고자 했던 과제들은 어떻게 마무리할 건지, 내년도 예산엔 반영해야 할 부분은 뭔지 꼼꼼히 챙겨 달라"고 지시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특히 공공기관 방만 경영 등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에 관한 강도 높은 사정(司正)을 통해 "이번 기회에 확실히 뿌리를 뽑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청와대는 앞서 천주교계 일각에서 제기된 `정권 퇴진` 요구와 관련해선 그 파장이 다른 종교계로까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분간 추가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는 쪽으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천주교 내부에서도 이번 논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사실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지부 소속 박창신 원로신부가 강론에서 `천안함·연평도 사태`와 관련해 북한 측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한 사실과 관련해선 검찰이 이미 수사에 착수키로 한 만큼 "그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