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강 정 - 언론인
국정원이 자체 개혁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개혁안은 전 직원의 정치개입 금지 강화, 국회?정당?언론사에 대한 정보원(IO)의 상시 출입 폐지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아예 국정원의 간첩수사권과 심리전단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당은 대공수사 핵심기관을 반신불수로 만드는 짓이라고 맞서고 있다.
#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의 철저한 자기 반성과 겸허한 자세로 시작돼야
정치개입과 관련한 국정원에 대한 불신은 상당 부분 국정원이 자초했다. 국정원 뿌리인 중앙정보부는 1961년 창설 이후 막강한 권력으로 반정부 세력과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 등 정권안보를 위해 정치의 중심에 섰었다.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로, 1999년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면서 변신의 몸짓도 보였다. 그러나 국정원의 정치중립을 불신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사법처리 과정에 있는 ‘댓글 사건’도 그런 의혹의 하나다.
역대 정권의 색깔에 따라 간첩검거실적이 들쭉날쭉했던 것도 국정원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공안사범이 김영삼, 이명박 정권 때 356명 검거된 데 비해,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절반도 안 되는 162명으로 크게 줄었다. 대공수사에 관한 한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 기간이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비판 받는 이유를 알만하다. 대북 햇볕정책이 추진되던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대북 대공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햇볕정책을 펴던 정권이 북한을 자극할까 봐 간첩 잡는 것을 견제했거나, 국정원 스스로 대통령의 뜻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정원 본연의 대공대북 업무가 정치적 영향으로 위축됐다는 의혹을 제공한 셈이다. 국정원 개혁이 국정원의 철저한 자기 반성 위에서 겸허한 자세로 추진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지금은 오직 국가안보의 잣대로 국정원 개혁을 고민해야 할 때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주장하는 민주당에 바란다. 지난 시대 탄압을 받기도 했던 아픈 기억 때문에 피해의식을 갖는 야당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의 안보상황은 미래지향적인 국정원 개혁을 절실히 요구한다. 국정원의 과거 잘못이 무엇이었던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국정원이 본연의 대북대공 업무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요즘 ‘국정원 개혁은 민주당이 반대하는 쪽으로만 가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민주당 주장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증거다. 민주당의 복잡한 속사정 때문인 것 같다.
여당도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불신을 최소화하고 더 이상 정치개입 시비가 없도록 열린 마음으로 야당과 개혁을 논의해야 한다. 국정원 개혁은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정답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여야 모두 국민적 비판과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한반도 정세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에서는 핵심 권력층에 있던 장성택마저 총살하는 등 잔인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히틀러나 스탈린의 공포정치 같다. 북한은 언제라도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이상의 무력도발을 벌일 수 있는 집단이다. 국내적으로도 우리는 불안요인이 많다. 일부 종교인까지 가세한 자칭 민주세력이 종북세력과 뒤섞여 곳곳에서 불법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활개 치고 있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동포도 이미 2만 5000명을 넘었다. 북한은 이들 탈북자 틈에 위장간첩을 침투시키거나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인질로 잡고 탈북자에게 간첩활동을 시키기도 한다.
국정원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지금 우리 안보상황은 매우 위태롭다. 국정원의 강력한 대북 대공기능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 실현에 대한 우려는 앞으로도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를 통해 보완해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만큼 높아졌다. 정치권은 어떤 경우에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 대통령과 국정원 원장의 확고한 신념과 용기에 국정원 개혁의 성패가 달려 있어
국가정보원법은 지금도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개입 논란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것이 법과 제도만의 문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역대 대통령과 국정원 원장들의 정치적 중립 의지와 결단, 행동하는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 개혁의 성공은 정치적 중립에 대한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과 결단, 국정원장의 소신과 용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다.
국정원의 인력운영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가장 우수한 인재를 대공업무에 배치하고 승진 등의 보상을 확실하게 보장해주어야 한다. 국정원 직원이라면 누구나 대공 분야에서 정년이 될 때까지 일하고 싶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엘리트들이 대북?대공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줄을 설 정도가 되면 우수한 전문가 양성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국정원 개혁에 대해 남재준 원장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큰 것 같다. 그는 노무현정부 때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청와대 측의 군 인사 압력을 끝까지 뿌리칠 만큼 원리원칙에 충실했던 전형적인 야전군이었다고 한다. 그는 취임사에서 “나는 전사가 될 각오가 돼 있다’는 말로 국정원 개혁의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모처럼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 국정원 개혁에 앞장 서는 것 같아 다행이다. 대북?대공 기능은 더욱 강화하고, 정치개입은 철저히 뿌리 뽑는 국정원장을 보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한다.